리콴유 며느리 호칭(何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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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이른바 '국가자본주의'를 앞세워 비약적 발전을 이뤄왔던 싱가포르 경제가 위기를 맞고 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싱가포르 경제를 지탱해온 국가소유 대기업들의 수익률과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2% 하락한데다 최근엔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을 당초 예상보다 낮은 2%로 수정 전망하는 등 전례없는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이런 어려움을 걷어낼 인물로 선택된 사람이 바로 지난 5월 자산규모 4백억달러에 달하는 싱가포르 국영 지주회사 테마섹 홀딩스의 사장으로 임명된 호칭(何晶·49·사진)이다.

테마섹은 싱가포르 20대 기업을 거느리고 있어 사실상 '주식회사 싱가포르'로 통한다.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의 며느리이자 리셴룽(李顯龍)부총리의 아내인 호칭은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엔지니어로 지난 10년간 테마섹의 방위산업 부문을 잘 이끌어 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호칭은 또 지난 10월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미국 제외)여성경영자 50인'중 6위에 오르기도 했다. 싱가포르 집권 인민행동당의 한 간부는 "호칭은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테마섹의 구조조정을 완수하면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실제로 호칭이 취임한 뒤 발표된 테마섹의 새로운 강령엔 테마섹 개혁의 가능성이 모두 언급돼 있다. 그러나 호칭이 이같은 개혁을 정말 이끌어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현 상황에서 호칭이 두가지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나는 GE의 전 사장인 잭 웰치처럼 테마섹의 골격은 유지한 채 공격적 경영으로 수익률 창출에 주력하는 것이다. 수익을 내는 회사를 중심으로 수익을 더욱 늘리고 그렇지 않은 회사들은 과감하게 정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선 뛰어난 경영수완이 요구된다.

다른 하나는 영국의 전 총리 마거릿 대처식 접근이다. 대처 처럼 공기업인 테마섹을 완전히 분해해 민영화하는 것이다. 이는 웰치적 접근에 비해 더 간단하긴 하지만 대담성이 요구되고 기득 이권과 충돌하는 부담이 따른다. 호칭이 과연 시아버지 시대의 잔재를 깨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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