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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주먹' 슈워제네거의 슬픈 초상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0면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언젠가부터 영화 관객들에게서 멀어져가기 시작해 이젠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배우로 전락해버린 듯하다. 최근 몇년간 그가 출연했던 '엔드 오브 데이즈''6번째 날''콜래트럴 데미지'등이 그저 그런 범작 또는 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게 그런 상황을 만들어낸 원인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훌쩍 50세가 넘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액션 영화만을 고집해온 슈워제네거의 욕심일 것이다. 팬들이 아직도 과거에 그가 보여주었던 액션 영웅을 바란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변치 않은 그의 그런 믿음이 만들어낸 비장의 카드가 바로 '터미네이터3'다. 오늘날의 그를 있게 해준 영화라고도 할 수 있는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부활함으로써 자신의 건재를 다시금 세상에 확인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래서 '터미네이터'의 창조자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직을 고사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꺼이 출연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바로 그렇게 시작된 '터미네이터 3:기계들의 반란'의 예고편이 얼마 전 공식 홈페이지(www.terminator3.com)를 통해 공개됐고, 슈워제네거의 기대처럼 네티즌들의 엄청난 관심을 끌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예고편의 내용은 좀 썰렁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영화 속 장면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고 2편의 T-1000을 떠올리게 만드는 액체금속과 T3라고 쓰인 컴퓨터 그래픽 로고만 등장하기 때문. 정식 개봉까지 무려 7개월이 남은 영화의 예고편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기대 수준에 크게 못 미친 것이다. 그나마 귀에 익숙한 주제음악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만들어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슈워제네거는 자신의 또 다른 출세작인 '코난'의 속편 제작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팬사이트(www.thearnoldfans.com)등에 따르면, '킹 코난:크라운 오브 아이언(King Conan:Crown of Iron)'이라는 제목의 속편이 2004년 개봉을 목표로 제작되고 있다.

코난의 아들 아이언 역에 '트리플 엑스'의 빈 디젤이나 '스콜피언 킹'의 더 록이 물망에 올랐고, 감독으로는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가 거론됐다. 그러나 제작사인 워너 브라더스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데다, 워쇼스키 형제마저 '매트릭스'의 속편을 완성하는 데 열중하면서 코난의 제작은 지연되고 있다.

게다가 일부 팬이 너무 나이가 들어버린 슈워제네거가 과연 코난을 연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슈워제네거의 '부활 프로젝트'는 이래저래 암초에 부닥치고 있는 셈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설사 그가 부활에 성공하더라도 그것이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금 팬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은 '터미네이터'와 '코난'이라는 영화지, 그 영화 속의 배우 슈워제네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코난'의 원작 판권을 소유한 코난 프로퍼티즈가 그를 뺀 속편을 제작하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슈워제네거에게 배우로서 환골탈태가 요구되는 시점인 것이다.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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