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서포터스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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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으로 나갈 기회가 생기면 몰라도 국내에서 다른 팀으로 이적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구단에 정도 들었지만 무엇보다 서포터스가 너무 고맙거든요."

8일 프로축구 대전 시티즌의 미드필더 이관우(24)는 강호 울산 현대를 꺾고 FA(축구협회)컵 4강 진출을 확정한 뒤 승리의 영광을 대전 서포터스 '퍼플 크루'에 돌렸다.

대전 구단은 시민들의 참여로 1997년 탄생했지만 재정적 지원이 다른 팀보다 부족해 매년 말이면 팀 해체설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렇게 있다 밥줄이 끊기는지 모르겠다"는 선수들의 푸념은 단순한 기우가 아닐 정도였고, 존폐 위기는 올해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대전 구단을 살린 것은 극성팬임을 자처한 대전 서포터스였다. 이번에도 해체설이 나돌기 시작한 11월 중순부터 서울·대전 등을 돌며 '대전 시티즌 살리기'서명운동을 하며 안간힘을 썼다. FA컵이 열린 남해에서도 이들 서포터스는 운동장 바깥에서 팬들을 대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 시청 및 시의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항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대전 시티즌이 없어지면 재선은 포기하는 게 좋을 것"이란 협박성 내용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간곡하고도 애절한 축구 사랑의 내용이었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대전 서포터스는 2백여명이었다. 구단의 지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모두들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버스 4대를 빌려 멀리 남해까지 찾아온 것이다. 이날 무려 1백여일 만에 프로팀을 상대로 귀중한 승리를 거두자 한 서포터스는 "프로축구 열기가 식어도, 우리팀이 꼴찌를 하더라도 우린 언제나 이 자리를 지킬 것"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대전 선수들이 왜 악착같이 경기를 할 수밖에 없는지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었다.

남해=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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