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25%까진 부풀리기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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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이 내신 성적 부풀리기 판단 기준을 제시함에 따라 일선 고교에서 성적 관리를 보다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기준은 2008학년도부터 시행되는 새 대입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는 현재의 고 2, 3학년생에게 적용된다.

하지만 "이 기준이 '어느 정도'까지는 성적 부풀리기가 아니라는 식의 면죄부를 줘 오히려 내신 부풀리기를 더 조장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기준은 어떻게 정했나=과목별로 평어 '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학생의 25% 이하면 성적 부풀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 기준을 정하는 데는 과목별 석차등급제로 따질 때 1등급이 4%, 2등급이 7%, 3등급이 12%로 3등급까지의 비율이 23%라는 점이 참고됐다.

또한 이번 실태조사에서 과목별 평어 분포의 전체 평균을 낸 결과 과목별로 '수'의 비율이 20~25%로 나타난 것도 반영됐다.

이에 따라 특히 중간.기말 고사에서 '수'를 받은 학생 수가 전체의 30%를 넘는 과목이 전체 시험 과목의 절반을 넘을 경우 학교가 고의로 성적을 올린 것으로 간주된다.

◆성적 부풀리기 조장하나=교육청에서 제시한 기준은 그러나 일선 학교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성적 부풀리기에 날개를 달아준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연세대가 공개한 지난해 수시 1학기 지원자의 성적 분포에 따르면 한 고교의 체육 과목의 경우 수강자 138명 중 137명이 '수'를 받았다. 다른 고교의 '독일어 회화1'과목에서는 수강학생 73명 모두 '수'를 받기도 했다.

또 시교육청이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도 이 같은 부풀리기 현상이 드러난다.

서울 K고의 경우 국.영.수 등의 과목에서 '수'와 '우'를 받은 학생의 비율이 64.5~74.7%에 달했다. 외국어고와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의 경우 대부분의 학생이 '수'와 '우'를 받았다.

이처럼 일선 고교에 성적 부풀리기가 만연한 상황에서 교육청이 '수'의 비율이 25% 이내면 괜찮다고 하면 그 이하의 분포를 보였던 학교들도 비율을 높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권대봉 고려대 교육대학원장은 "전체 학생 중 25%가 '수'를 받아도 된다고 한 것은 정상 분포를 고려할 때 그 비율이 다소 높다"면서 "이렇게 되면 그동안 정직하게 내신 관리를 해온 고교들이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내신 신뢰도 더 떨어질 듯=교육청이 제시한 기준대로 내신 관리가 이뤄지면 대입 전형 자료로서의 내신 변별력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대 이용구 입학처장은 "교육청이 제시한 기준에 따르면 학생 네명 중 한명이 '수'라는 것인데 너무 높다"면서 "우수한 학생을 뽑으려고 노력하는 대학 입장에서 내신의 반영률을 높이기는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권대봉 원장도 "내신에서 '수'를 주는 비율은 수능 등급과 맞춰 정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근거도 없이 25%라고 정한 것은 문제"라고 강조했다. 반면 일부 교사는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홍성수 단대부고 진학부장은 "원래 '수'는 상당히 적어야 하지만 그것은 상대평가에서 가능한 것"이라면서 "25%는 상대평가와 절대평가의 절충안으로 학교 현장에서 수용할 수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위반하면 어떻게 되나=교육청 조사에서 성적을 뻥튀기한 사실이 적발되거나 민원이 제기되면 특별 장학지도를 받게 된다. 성적 부풀리기가 사실로 확인되는 학교는 행정.재정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특별감사와 징계를 포함한 관련자 인사조치, 학교 기본 운영비 감액 등의 조치를 당하게 된다.

하현옥.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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