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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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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산업화의 첫 단계는 농업 자립화입니다. 지금 한국은 농업에 투자할 시기죠. 외국 은행들도 차관 제공을 거부한 마당에 제철소 건설을 밀어붙이는 것은 무모한 선택 아닐까요?"

1969년 제철소 건설 자금 마련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은 도쿄에서 굴욕적인 말을 들었다. 발언의 주인공은 일본 통산상이었다. 제철 대국의 입장에선 당장 굶주림에 시달리는 한국이 쌀 아닌 철을 만들겠다고 돌아다니는 것을 가당찮게 여겼을 것이다. 그래도 박 사장은 귀국할 수 없었다.

국교 정상화를 위한 한.일 회담에서 양국은 청구권 자금을 '농림수산업 발전용'에 쓰기로 합의했었다. 박 사장은 이 자금을 포철 자금으로 전용하기 위해 일본 정부의 동의를 받아내는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일본 내각은 전원 합의제 정신으로 운영되기에 각료가 한명이라도 반대하면 정부 결정이 나올 수 없다. 박태준 사장은 일본 통산상을 설득하려고 생면부지의 그를 1주일 동안 세번 찾아갔다. 냉정하고 사무적이던 통산상은 결국 "당신같이 끈질긴 사람은 처음본다"라며 전용 찬성론으로 돌아섰다.

그렇게 시작한 포철이 30여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높은 철강회사가 됐다. 포철의 교사였던 일본 제철소들을 뛰어 넘었다. 굴욕이 영광으로 전환됐다. 1981년 요미우리 신문은 한국이 일본을 위협하는 제철강국으로 성장했음을 걱정하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일본의 기술협력으로 힘을 붙인 한국의 철강업계가 이젠 오히려 일본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한국에서 수입하는 철강은 올해 보통강재만 100만t을 돌파할 기세다. 보통강재 전체 수입량 중 한국 제품이 80%를 차지한다. "(이대환, '세계 최고 철강인 박태준')

기회를 얻기 위해 굴욕을 선택하는 것은 인간사에서 가끔 있는 일이다. 자존심보다 생존이 절실한 경우에 그렇다. 굴욕의 때를 세월이 지나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남길 것인가, 번영을 향한 반전의 기회로 삼을 것인가는 주체의 다음 행동에 달려 있다. 40년 전 한.일 협정은 굴욕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굴욕으로 받아낸 청구권 자금을 포철이나 경부고속도로 같은 기간산업 건설에 사용해 세계 경제 10위권의 번영을 이뤄냈다. 굴욕적인 선택이었지만 수치스러웠다고 기억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닐까.

전영기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