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생각은…

종로에 노인 복지센터를 짓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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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 대법원장이 한강에 투신자살했다. 유언장을 남기지 않아 정확한 동기는 알 수 없으나 노환을 비관한 것이라고 한다. 평생 남부럽지 않은 사회적 직업과 명예를 갖춰도 세월 앞에 무력해지는 나약한 존재가 인간인가 싶어 안타까운 마음에 가신 분의 명복을 빌어본다. 인간이 죽음에 이르는 것은 외로워서라는 말이 있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더 이상 그렇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종로와 가까운 안국동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요즘도 종로에 나가면 수많은 노인을 뵙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그분들의 무리는 변함이 없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의 노인들은 내가 어릴 적 바쁘게 생활하시던 장년층이었으리라.

옛날에는 노인들이 파고다공원으로 불리던 탑골공원에 삼삼오오 비둘기와 함께 모였지만 이제는 종로4가 쪽, 새로 조성된 공원과 지하철 1호선 종로3가 역 구내에 많이 서성이신다는 것밖에는 별 변화가 없다. 노년이 되어 직업과 생계활동을 청장년층에게 물려주고 시간과 병마 앞에 나약해져 가는 몸과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 오늘도 벗을 찾아 나오신 그 분들.

나도 언젠가 저분들처럼 느린 걸음을 걷게 되겠지 하는 생각에 시간과 마음을 조절하는 마술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는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것을….

나는 항상 생각해본다. 종로, 노인분들이 그리 많이 모이는 노인의 메카에는 왜 노인을 위한 시설이 없을까? 한여름에는 찌는 듯한 더위를 막아주는 천장이 있고 한겨울에는 따뜻한 온기를 주는 그런 노인 복지회관이 왜 없는 걸까? 인생의 내리막길에 혼자 내동댕이쳐진 외로움을 왜 길거리에서 더 곱씹도록 우리는 내버려두는 걸까? 신도시에는 큰 복지회관이 있어서 취미생활을 즐기고 물리치료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지만 서울시내의 중심에는 그런 곳이 왜 없는 것일까? 물론 동이나 구청단위로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인들이 흐르는 물처럼 모여드는 그곳, 서울의 중심에 자연스럽게 큰 노인센터를 지어드리면 어떨까? 한평생 수고하신 그분들의 노고를 존중해드리고 지혜를 물려받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센터를 지어드리자! 누구나 눈 깜짝할 사이에 노인이 될 테니까.

정현주 수원여대 광고영상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