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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이승택 '바람'- 30대 이윰 '끼' 두 이방인 '누가 더 튀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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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미술계에서 알아주는 이방인 두사람이 한 전시장에서 만났다. 한사람은 지치지 않는 실험정신으로 조각·설치·퍼포먼스 등 장르를 넘나들며 미술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온 올해 칠순의 노익장 이승택이다. 나머지 한사람은 '빨간 블라우스'전, '살아있는 조각'전, '매란국죽'전 등을 통해 기성세대의 미술 문법에 신선한 충격을 줬던 서른 한살의 '앳된' 여장부 이윰이다.

주류 미술계에 끊임없이 비판적인 발언을 제기해 온 이승택은 뿌리부터 아웃사이더고 이윰은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밝힌 명함을 가지고 다닌다. 범상치 않은 두 사람이 만나는 장소도 심상치 않다. 미술계의 아웃사이더, 언더그라운드 작가들에게 작업실과 전시 공간을 제공, 숨통을 터주고 있는 홍대 앞의 대안공간 '쌈지스페이스'다.

두사람의 만남은 쌈지스페이스가 20세기 아방가르드 원로와 21세기 신세대를 대결시켜 세대간 대화를 이끌어낸다는 취지로 준비한 연례기획 '타이틀매치'전의 첫 순서다. 전시 제목부터가 '이승택 VS 이윰:바람풍, 바람끼'로 튄다. 지난달 26일 시작된 타이틀매치는 성탄절까지 이어진다. 주변을 압도할 만큼 튄다는 점을 빼고는 언뜻 공통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두사람을 한 전시장으로 묶어 놓은 매개는 바람이다.

이승택은 1950년대부터 바람·연기·불 등 잡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무형의 소재들을 조형화하는 데 주력해 왔다. 바람에 날리는 연기를 그린 60년 드로잉 작품 '연기', 수백개의 생목(生木)에 가늘고 긴 흰색 헝겊을 묶어 바람에 날리도록 한 70년 설치작품 '바람', 너비 1m·길이 50m의 빨간색 헝겊을 벌판에서 바람에 날린 70년 퍼포먼스 '바람-민속놀이' 등 전시된 작품들은 모두 무형의 현상 바람을 조형화한 결과물 들이다.

이승택이 새로운 작품을 내놓지 않아 김이 조금 샜다면 2년간의 작업 공백을 깨고 새로운 작품들을 들고 나타난 이윰은 반갑다.

작품 '샤인(shine)'은 4평 남짓한 2층 프로젝트 갤러리 전체를 채우고 있다. 갤러리는 입구에서부터 속 안까지 천장과 바닥 전체를 구겨진 노란색·하얀색 습자지로 뒤덮었다. "아늑하고 밝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라는 게 이윰의 설명이다. 갤러리 한가운데 서있는 TV 화면에서는 나뭇가지 사이로 마치 숲의 정령 같은 모습의 이윰이 오락가락하는 2분 길이의 동화상이 계속해서 돌아간다. TV 속 이윰은 언뜻 노래 같지만 뜻을 알아들을 수 없는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다. 이윰은 "보이지 않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며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호흡에 자신을 맡겼을 때 자연스럽게 흐느껴지는 일종의 방언"이라고 소개했다. 이윰 작사·작곡 곡인 셈이다.

이윰은 이번 전시의 주제를 히브리어로 바람을 뜻하는 '루아흐(ruach)'로 삼았다. 이윰에게 익숙한 팬들은 이번 '얌전한' 변신이 당혹스러울 듯싶다.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한 95년부터 99년까지 에너지 소모가 너무 컸다. 예술적인 맥락이나 문화적인 문맥에서 작품이 어때야 하는지를 계산했다. 지난 2년간은 나를 채우는 치유의 기간이었다. 삶의 내공이 쌓여야 작업이 의미있게 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변신의 변이다. 이 여자, 서른 넘어 철든 것일까.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신현진씨는 "이승택의 물리적인 바람과 이윰의 영적인 바람이 각각 끼와 기(氣)로 탈바꿈했다"고 전시의 의미를 짚었다. 5일 저녁에는 두 작가가 한자리에 앉아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 3142-1693.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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