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仁濟 의원의 처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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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인제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 자민련에 입당한다. 그와 민주당의 결별은 예정된 것이어서 새삼스러울 게 없다. 그럼에도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李의원이 민주당을 떠나야 했던 앞뒤의 마디마디가 무원칙·무정견을 일삼는 정치권이 교훈으로 삼아야 할 요인들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이인제 추락'은 5년 전 이미 예고된 일이다.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탈당해 독자 출마를 결행한 게 불행의 시발이었다. 이제 민주당을 떠나면서 그토록 거칠게 비난하는 DJ정권 출범을 결정적으로 도왔던 것이다.

그가 '부패 세력'이라고 규탄한 민주당은 또 무엇인가. 바로 李의원 자신이 상당 지분을 갖고 창당한 정당이다. 그의 주장처럼 특정 지역 패권 세력의 정치 공작에 의해서인지는 몰라도 또 한번 대선 후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고, 몸담았던 당을 등지는 신세가 됐다. 그는 "부패 세력과 급진 과격 세력의 집권 연장 기도를 막기 위해"라는 탈당 명분을 내걸었지만 5년 전 시작된 이그러진 정치 행보로 인해 호소력이 떨어진다.

경선 불복이라는, 기본 원칙을 거부한 대가는 이처럼 혹독하다. "애당초 결정에 따랐다면 기회가 주어졌을텐데"라는 가정(假定)은 보통의 가정과 달리 게임 룰 정립이 시급한 우리 정치에서 시사하는 바 크다.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는 李의원에겐 아픈 경고다.

두 차례의 불복과 탈당 전력이 있는 李의원인 만큼 보다 엄격한 원칙 준수와 수범 요구가 따를 것이다. 다른 정치인이라면 지나칠 수 있는 과오에도 여론의 가혹한 질타가 이어질 수 있다. 본인의 선택 여지도 좁다. 행여 3金 시대 지역 할거의 부활이나 기도한다면 그것은 소생이 아닌 자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때 적잖은 국민의 지지와 기대를 모았다가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선 李의원의 존재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 정치는 기교나 술수로 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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