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같은 불량학생이 오는 곳" 하자센터 이렇게 만들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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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센터(서울시립 청소년 직업 체험 센터)는 어떤 곳일까? 처음 연세대 조한혜정(사회학과) 교수에게서 대안 교육의 모델을 만들겠다는 설명을 들은 연세대 김병수 총장은 "불량 학생들이 오는 곳이냐?"고 물었다. 조한교수의 대답은 "서태지 같은 불량 학생이 오는 곳"이었다. 이 말 한마디에 김총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프로젝트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일과 놀이가 따로 놀지 않는 곳, 제도권 교육에서는 '삐뚜름'하다고 인정받을 서태지 같은 아이들의 능력을 발견하고 제 길을 찾게 하는 곳이 바로 하자센터다.

생활디자인·영상·대중음악·웹·시민문화 등 다섯 개 작업장으로 이뤄진 하자센터는 1999년 5월 문을 열었다. 그동안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 공연하는 '서커스 유랑단' 등 수많은 프로젝트가 진행됐고 신문·방송 등에 이들의 활동이 소개됐다. 십대 문화기획자들의 발랄한 아이디어는 곳곳에서 빛을 발했다.

최근 하자센터의 대안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벤치마킹하겠다는 곳도 있어 자료 요청도 많아졌다. 그래서 기획된 것이 『하자총서』. 첫째권이 98년 봄부터 시작된, 하자센터 준비과정을 다룬 『왜 지금, 청소년?-하자센터가 만들어지기까지』다. 하자센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지원자들과 자본을 모으고, 하자센터 설립 목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는 과정을 담았다. 총 12권으로 기획된 『하자총서』에는 앞으로 영상·디자인·소리 작업장의 이야기며, 체험을 통해 자기 길을 찾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조한교수를 포함해 양선영(연세대 사회학과 석사과정)·서동진(문화평론가)씨 등이 하자센터에 뛰어들게된 까닭은 무엇일까? 경제 발전 논리로만 무장해온 우리 사회는 문화를 21세기 삶의 돌파구로 인식해 가고 있다. 창조적 인간형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나 현실은 입시 위주 교육으로 대량 생산 제조업 시대에 적합한 인력을 길러 내는 데 급급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OO교육원 등 거대한 건물들을 세워 놓고는 그 안에 어떤 소프트웨어를 채울지 몰라 헤매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연구를 위한'연구'가 아닌, 현실과 학문을 잇는 작업을 해보기 위해 청소년 문제에 뛰어들었다.

책은 이들이 청소년을 통해 시도한 새로운 문화 실험이 어떻게 이론화되고, 발전됐는지를 보여준다. 청소년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치를 가늠하고, 이들의 잠재력이 열어줄 새로운 비전도 세워보고, 다른 나라의 대안 교육도 살피고 있다.

따라서 학교의 갑갑한 현실이 도드라져 보인다. 현재 학교를 다니는 많은 청소년은 '병렬형' 삶을 살고 있다. 학교는 형식적으로 다니고, 학교 밖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워크맨을 사려고 밤늦도록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수업 시간에는 졸기 일쑤다. 담임 선생님을 '담탱'이라 부르고, 기성 세대와는 거리를 두고 싶어한다.

그러나 풍요로움의 수혜를 받은 청소년들은 대안 문화를 형성해내기보다 기성 세대가 만들어낸 유흥 문화, 소비 문화에 스스로를 소진하고 있다. 그래서 하자센터팀은 청소년들에게 문화 생산 주체로 서나갈 방법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또 현재의 문화적 위기가 세대간 의사 소통의 단절에서 첨예하게 드러나고 있는 만큼 이 문제에 대한 해법도 찾아보려 한다. 이들은 청소년과 기성 세대가 얼마나 잘 소통하는지 여부가 21세기 삶의 질을 결정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홍수현 기자

shin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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