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영화산업:스크린 뒤 '여인의 향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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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199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 제작은 남성들만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여성 영화제작자 1세대'로 불리는 명필름의 심재명(39) 대표와 좋은 영화의 김미희(38) 대표, 영화사 봄의 오정완(38) 대표 등 '30대 3인방'이 등장하면서 영화업계에 여성 최고경영자(CEO) 바람이 불고 있다. 이들은 모두 63∼64년생으로, 나이도 엇비슷한데다 충무로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10여년 만에 영화제작자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소위 돈 되는 상업영화를 만드는 데는 탁월한 감각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똑같다. 이들 3인방은 한결같이 "영화제작 분야는 여성들이 기를 펴고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단언한다.

이들이 히트작을 양산하면서 활동영역이 넓어진 데다 돈 대겠다는 사람도 많아 여성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반면 일부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다.

영화의 흥행 여부를 판단하는 감각은 뛰어나지만 회사를 꾸려가는 경영 안목에 대해서는 보완해야 할 점이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3인방 중 가장 유명한 沈대표는 96년 '코르셋'을 시작으로 '접속' '조용한 가족' '해피엔드' '섬'등의 히트작을 잇따라 내놨다. 이어 2000년엔 우리나라 인구의 10%가 관람한 '공동경비구역 JSA'로 대박을 터뜨렸다. 동덕여대 국문과 출신으로 졸업 후 영화 광고 카피라이터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는 "여성 제작자로 성공하려면 대중문화의 흐름을 꿰뚫는 시각과 제작사를 운영하는 경영감각, 예술적 안목 등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아시아에서 여성 제작자들이 활동하기 가장 좋은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말한다.

술 실력도 대단해 남자 제작자들과 어울려 폭탄주를 마셔도 다음날 거뜬하다. "회사 설립 이후 은행 거래와 재무제표를 보는 데 익숙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다"며 "여성 후배들이 경영감각까지 갖췄으면 한다"고 충고했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등 독특한 영화의 세계를 펼치고 있는 좋은 영화의 金대표는 단국대 국문과 출신이다. 88년 중국영화 수입업체인 화천공사에 광고문구를 담당하는 카피라이터로 영화계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올해도 3개의 작품을 개봉할 만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술은 거의 못하지만 친화력이 대단한 데다 추진력도 남성 못지 않다는 평가다. 그는 "영화산업은 분기 단위로 흥행 패턴이 변할 정도로 변화속도가 빨라 섬세하고 꼼꼼한 여성들에게 적합한 업종"이라고 말한다.

영화사 봄의 吳대표는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대형 제작사인 신씨네에서 '결혼이야기' '은행나무침대' 등의 히트작을 내면서 실력을 다져왔다. 97년 독립한 뒤 '정사' '반칙왕' '눈물' '쓰리'등의 대박을 잇따라 터뜨려 입지를 굳혔다. 특히 크리에이티비티(창조성)와 기획력에서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영화계에 입문할 때 큰 꿈을 갖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직업으로 선택했다"면서 "현재 직업인으로서 인정받은 데 대해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앞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해 '만족' 일변도만은 아닌 것 같다.

吳대표는 최근 영화계에서 가장 의미있는 일로 한국영화의 대박 풍년을 꼽지 않는다. 이보다는 영화계가 산업으로 입지를 다졌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투자 여건이 좋아졌고, 우수한 인재들이 대거 몰렸다는 얘기다.

그는 또 "2000년 이후 영화산업에 거품이 많아졌다"며 "대박 한 건을 노리기보다 풍부한 자본·인력을 바탕으로 안정화·체계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에선 롯데백화점의 신영자(60) 부사장과 동양제과의 이화경(46) 사장이 영화업계의 '큰손'으로 통한다. 辛부사장은 99년부터 전국 19개 롯데백화점에 '씨네마 롯데'라는 영화관(53개 스크린)을 설립하면서 영화사업을 시작했다. 2005년까지 1백50개 스크린에 3만5천객석을 확보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영화 제작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李사장은 지난 2월 영화제작·배급사인 쇼박스를 설립, 대표이사로 취임했다.그동안 계열사인 메가박스를 통해 전국에 영화관 53개(스크린수)를 개장하며 영화 사업에 열정을 보여 왔다.

김태진 기자

tjkim@joongang.co.kr

여성 제작자 말말말

"흐름 읽는 감각, 경영능력, 예술적 안목 갖춰야"

"충무로 밑바닥부터 쌓은 탄탄한 기본기가 큰 힘"

"대박 노리기보다 영화산업 안정 위해 노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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