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式 계산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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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몽준대표는 대선 무대를 떠났다. 설악산에서 그는 손익계산을 했을 것이다. 국민통합21의 씀씀이는 짠돌이 평판대로였다. 현대중공업의 자기 주식을 명의 신탁하겠다는 약속은 초점에서 멀어졌다. 거꾸로 단일화 직후 주가가 뛰어 재미를 봤다. 창당 비용으로 16억원을 썼는데 후원회 때 50억원이 들어왔다. 단일화 승복으로 박수도 받았다. 최소 투자로 최대 효과를 거둔 듯하다.

그런 장사를 할 수 있는 계산과 야망은 어디에서 왔는가. 어떻게 현역 의원 한명 없이 대선에 뛰어들었는가. 그 해답은 월드컵에 얽힌 鄭대표의 독특한 행태와 재주 속에 있다.

월드컵 성공의 한복판에 鄭대표가 있다. 그러나 공로를 독식했다는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유치과정이 그렇다. 강신옥 전의원 등 鄭대표쪽에선 "鄭후보 혼자 자기 돈 써가며 백방으로 뛰어 월드컵이 성사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선전은 많이 먹혔다. 그러나 상당 부분 틀린 얘기다. 그가 열심히 뛴 것은 맞다. 반면 '자기 돈 써가며'부분은 엉터리다.

진상은 이렇다. 월드컵 공동개최가 확정된 것은 1996년 김영삼(YS)정권 때다. 유치 때 들어간 공식 경비는 3백30억원. 그 돈을 만든 것은 유치위원장인 구평회(당시 무역협회장)씨며 YS는 그를 월드컵 1등 공신으로 꼽는다.

5공시절 올림픽 유치와 달리 YS는 돈과는 담을 쌓았다. 具회장의 작업은 힘들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LG에서 40억원을 가져온 뒤 삼성·현대·대우가 같은 액수를 냈다. 포철·SK도 비슷했다. 나머지는 전경련을 통해 모았다.

모금 때 鄭대표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쓸때는 가장 활발했다. "절반(1백65억원) 이상을 鄭대표가 가져갔다"고 具회장은 회고한다. 그 과정에서 어처구니 없는 소동이 터졌다. 鄭대표가 한번도 영수증을 내지 않은 탓이다. 점잖은 具회장이 "한 두푼도 아니고 어디에 썼는지 영수증을 가져와야 자금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지적해도 듣지 않았다고 한다.

의혹으로도 번졌다. 당시 관계인사는 "국제축구연맹(FIFA)쪽 개인적 로비에 드는 비용은 공식경비와는 별도로 지출됐다. 그렇다면 鄭의원이 그 많은 뭉칫돈을 어디에 썼는지 의문이 따랐고 내부 갈등도 심각했다. 기업이 낸 돈이지만 국민성금 성격을 갖고 있는데 영수증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그가 대선무대에 남았다면 '영수증 미스터리'는 도덕성 쟁점으로 등장했을 것이다. 한나라·민주당 모두 추적해온 사연이다. 그 내막을 문화관광부장관 출신들은 잘 안다. 반면 姜전의원은 그런 미스터리를 부인한다.

그런 고약한 내막은 월드컵 성공 속에 묻혔다. 실탄을 만든 노고는 잊혀지고 총 쏘는 재미는 鄭대표가 봤다. 그것은 남의 공로를 생략하고 스포트 라이트를 자기한테 집중시키는 이미지 관리 기술일 수 있다. 그는 대선도 최소투자·최대이익이란 자기만의 독특한 경험을 적용하면 승산이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대중 동원과 인기도 월드컵과 기본 이치는 같다.

대선무대에서 그는 몇가지 거점에 치중하는 중점주의로 나갔다. 박근혜의원이 그 핵심 대상이었다. 그러나 朴의원의 잣대에는 낙제점으로 나왔다. 국정 비전과 정책노선도 선명치 않은 상태에서 얼렁뚱땅 대통령이 되려는 것으로 朴의원에게 비춰진 듯했다. 그는 심야에 朴의원의 집 앞 차속에서 기다리는 정성을 쏟았지만 그땐 만나지도 못했다.

鄭대표는 3천여원짜리 식권을 나눠주는 당운영을 했다. 그것은 돈 덜쓰는 정치라는 평판을 얻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의 자원봉사 개념이 고도의 정신노동까지 적용되면서 주변에 의문을 던졌다. 혼신의 힘을 쏟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었다. 충성과 봉사는 금이 가버렸다. 그와 절친한 Q씨조차 "월드컵에선 남의 노력과 공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절묘한 재주를 보였다. 그러나 지도자를 뽑는 대선에선 정몽준식 계산법은 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bgpark@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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