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거래소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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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카드 빚을 내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금융당국과 금융계는 카드 빚으로 주식투자에 나서는 투자자들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자료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카드 대출을 받을 때 용도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투자자들의 매매 추이를 보면 그 실태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달 말까지 개인투자자들은 2조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그러나 매달 20∼25일에 매매한 규모만 합산하면 2천6백20억원의 순매도를 기록해 나머지 기간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증권업계에서는 이같은 매매 패턴이 신용카드 결제를 위한 자금 마련의 성격이 짙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 모 대형카드사가 고객들의 결제일을 분석한 결과 22∼26일에 63.3%가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래픽 참조). 이 때문에 카드 빚을 낸 개인투자자들은 대금 납입일 이틀 전까지 주식을 대거 내다팔아 자금 마련에 나선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가계대출을 조이는 정책이나 카드사에 대한 건전성 강화 방안을 내놓은 시기 전후에는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예컨대 지난 3월 25일 금융정책협의회에서 카드사 대출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상향조정하고 신용불량자 등록이 많은 카드사에 대한 특별검사 방안을 제시하자 개인투자자들의 매매패턴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다음달 개인투자자들은 20∼25일을 제외하고는 5천6백억원을 순매수했지만 결제기간 즈음에는 2천7백억원으로 순매수 규모가 줄었다.

금융기관간 5백만원 이상 대출정보 공유제도 시행(9월)을 앞둔 8월에는 20∼25일에 7천9백억원을 순매도했다. 나머지 기간에는 오히려 매수가 3천5백억원 많았다. 이달 들어서도 가계대출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11일 카드사 감독강화 정책이 발표되자 지난 20일 이전까지 5천2백억원에 그쳤던 개인 순매도 규모가 카드결제일이 몰린 20일 이후부터는 무려 1조1천3백억원으로 급증했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카드대금일을 앞두고 처분한 주식 대금 중 일부는 단타매매용 대출금을 갚는 데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카드 빚으로 주식을 산 투자자들이 정부의 대책발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물론 이 같은 추세가 모두 카드 대출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카드사 관계자는 "현금서비스 등을 받을 때 용도를 묻지 않기 때문에 주식투자로 얼마나 사용되는지는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증권사 관계자는 "특히 시황이 좋을 때는 카드대출자의 투자가 늘어난다는 것이 정설"이라며 "이 같은 매매 패턴을 좀 더 정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현철 기자

chd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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