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꺾인 '벤처 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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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1999년 말, 서울엔젤클럽에는 난리가 났다. 당시 다음커뮤니케이션 등과 함께 포털로 잘 나갔던 벤처기업 노머니커뮤니케이션이 3억원을 펀딩하는 데 1백20억원이 몰렸기 때문이다. 7백50여명에 이르는 투자자들이 지분참여를 호소하며 난리를 피우자 회사측은 긴급회의를 열어 당초 5백만원이던 최저 투자액 내부규정을 무시하고 신청자 모두에게 40만원씩 투자액을 분배하는 긴급조치를 취했다.

3년 후인 요즘 벤처투자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서울엔젤클럽(kcci. or. kr)은 호프집에 의존해 연명하고 있다. 최근 2년 동안 벤처투자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투자중개수수료 수입이 없어지자 회사측은 2000년 중반 강남역 부근에 호프집을 열었다.

지난해에는 압구정동과 선릉동에 맥주집을 열어 3곳에서 나오는 월 수입 4천여만원으로 사무실을 유지하고 있다. 투자 자금은 외식에 관심이 있는 10여명의 회원들이 모은 40여억원으로 충당했다.

서울엔젤측은 앞으로 외식업계에 더 투자해 현금유동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엔젤클럽은 모두 33개. 이 중 99년 초 설립된 서울엔젤클럽은 회원 1만여명이고 이들이 투자한 액수는 1백50개 벤처에 1천2백억원. 국내 전체 엔젤 투자액의 절반을 넘는다. 현재 15개 벤처 정도가 이익을 낼 가능성이 있어 보이고 나머지는 원금 회수가 불투명하다.

서울엔젤 백중기 사무국장은 "벤처투자가 바닥을 헤매고 있으나 내년 중반부터는 기술력 있는 벤처중심으로 투자열기가 살아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앞으로는 벤처 뿐만 아니라 개인 창업자에게도 투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형규 기자

chkc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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