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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보대출 깐깐해졌다는데 괜찮나, 내집 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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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6면

급격히 달라진 주택담보대출 제도 때문에 은행 고객들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H은행에서 중도금 대출을 받고 있는 이선민씨는 은행 직원으로부터 "기존 고객에겐 대출한도를 축소하거나 금리를 올리지 않기로 했다"는 설명을 듣고 다소 안심하는 모습이다.

임현동 기자

서울 행당동에 사는 주부 이선민(35)씨는 요 며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인근에 새로 지은 42평형 아파트를 3억원에 분양받아 2004년 3월 입주할 예정인 李씨네는 H은행 행당역 지점에서 1, 2차 중도금 6천만원을 대출받은 상태. 앞으로 세번에 걸쳐 나머지 9천만원의 중도금과 잔금 일부도 대출받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최근 잇따라 발표된 가계대출 억제조치로 은행이 대출한도를 줄이고 금리도 올려받을 것이라는 말들이 나돌았다. 자칫 새 집 장만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 노심초사하던 李씨는 은행 창구를 찾았다. 담당 직원은 "본점과 의논 끝에 이미 계약을 한 중도금 대출에 대해선 한도 축소나 금리 인상 등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李씨는 다소 마음을 놓았지만 여전히 일말의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주택담보대출 제도가 11월 한달 새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은행마다 경쟁적으로 면제해 주던 담보 설정 비용을 다시 고객들에게 물리기 시작했다. 집값의 최고 80%까지 빌려주던 대출한도도 50∼60%로 낮아졌다. 빚이 많은 사람에겐 금리를 더 물리겠다는 은행들도 하나 둘씩 늘고 있다. 앞으로 집을 사기 위해 은행 돈을 빌리는 사람들의 부담이 크게 늘어날 판이다.

단, 이같은 조치들은 모두 새로 대출계약을 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며 기존 대출 계약자나 만기연장을 하는 경우엔 상관이 없다는 게 정부나 은행쪽의 공통된 설명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사실 지난 몇주 동안 금융감독원쪽에서 명확한 지침을 내리지 않아 은행 직원이나 고객 모두 오락가락 했다"면서 "그러나 지난 21일 정부 대책회의 이후 변화된 조치들을 신규 대출에만 적용하라는 지침이 와 이같이 창구지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李씨처럼 현재 중도금 대출을 쓰다가 등기 이전 후 담보대출로 전환되는 고객들의 경우에도 신규 대출이 아닌 기존 대출로 보고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금감원의 방침이다. 장현기 금감원 은행감독국 경영지도팀장은 "다만 11월 말 이후 새롭게 중도금 대출을 받는 사람들부터는 변화된 조치를 적용받는다"고 말했다.

앞으로 내 집 마련을 위해 은행 돈을 빌려쓸 사람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최근의 변화를 소개한다.

◇대출한도 줄어든다=우선 집을 담보로 빌릴 수 있는 돈의 규모가 대폭 줄어든다. 한달 전만 해도 집값의 80%까지 담보가치를 인정해주던 은행들이 이달 들어 이 비율을 50∼60%로 확 낮췄기 때문이다. 게다가 2억∼3억원짜리 아파트에 대해서도 임차보증금을 반드시 대출한도에서 공제하는 조치가 시행됐다.방이 한 개인 경우 방 한 개의 임차보증금에 해당하는 1천6백만원을,방이 두 개 이상인 경우 방 개수 절반 만큼의 임차보증금을 빼고 돈을 빌려주라는 것이다.

이같은 조치에 따라 국민은행의 경우 방 3개인 2억5천만원짜리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해 줄 수 있는 한도가 10월 말엔 1억5천만원[2억5천만원×60%]이었지만 11월 말엔 1억3천5백만원[2억5천만원×55%-(1천6백만원×3×0.5)]으로 한달 새 1천5백만원이 줄었다.

<표 참조>

줄어든 한도 이상으로 은행 돈을 빌려 집을 사야 하는 사람이라면 담보대출보다 다소 금리가 높은 신용대출이나 보증대출로 일부를 융통할 수밖에 없다.

◇금리 및 비용은 올라간다=최근 몇 년간은 담보로 설정된 집값의 0.8∼1.0%를 내야 하는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은행이 부담해왔다. 원래 고객이 내야 할 비용인데 은행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은행이 이를 대신 내준 것이다.그러나 많은 은행들은 다시 고객이 이 비용을 부담하도록 했다. 국민·기업·신한·외환·우리·한미은행은 이미 담보설정비 면제조치를 폐지했다.농협·제일·조흥·하나·씨티은행도 머잖아 설정비 면제조치를 폐지할 예정이다. 담보설정비를 고객이 부담할 경우 3년만기 대출이라면 금리가 연 0.2∼0.3%포인트씩 올라가는 것과 같은 영향을 미친다.

부채비율이 2백50%(대출 총액이 연간소득의 2.5배)를 넘는 고객에 대해 가산금리를 물리는 은행도 속속 늘어나고 있다. 예컨대 연소득이 3천만원인 근로자가 집을 담보로 7천6백만원을 빌린다면 소득에 비해 부채가 너무 많은 만큼 신용도가 떨어진다고 보고 높은 금리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은행의 경우 부채비율 2백50% 초과자에 대해 0.25%포인트, 기업은행은 1%포인트의 금리를 더 물리겠다고 발표했다. 우리·조흥·제일은행 등도 금리 인상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미은행은 아직 금리를 올리진 않았지만 담보인정 한도를 10% 축소하는 조치를 시행 중이다.부채비율이 2백50%를 넘는 사람에 대해선 집값의 50%(일반은 60%)만큼만 돈을 빌려준다는 것이다.

◇중복대출 어렵다=은행 돈으로 집을 두 채 이상 사기도 힘들어진다. 기업·조흥·하나·씨티은행은 이미 한 건의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있는 사람이 다른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신청할 경우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최근 정부 차원에서 전개되는 투기 방지책에 부응하는 조치다.

국민·신한·외한은행 등의 경우 두번째 주택을 담보로 대출해 주긴 하지만 한도를 두고 있다.

신예리 기자 shi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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