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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영상 분야 석학 대담] 조장희 박사·욜레즈 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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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인체를 유리병 안을 들여다 보듯 할 수 있다면 암 등 질병 진단과 치료는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최첨단 의료 영상장비는 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PET)와 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MRI)다.두 장비는 질병 진단 뿐 아니라 그동안 신비에 가려졌던 뇌 속을 영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해 뇌과학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의료 영상 분야의 세계적인 거두인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 조장희(69) 박사와 미 하버드대 페렌츠 욜레즈(59) 박사의 대담을 통해 의술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인체 영상기기의 발전 방향 등을 조망해봤다.

▶조장희 박사=새로운 진단, 수술 의료기기 개발이 의료기술의 혁신을 불러온다. 인체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영상기기는 의학 발전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정밀하고 정확한 의료 영상기기가 나오느냐에 따라 인체의 신비는 더 빨리 벗겨질 것이다.

▶욜레즈 박사=30년 전 내가 신경외과 의사로 근무할 당시만 하더라도 인간 뇌를 비롯한 신체 내부를 영상화할 수 있는 기법은 X선 외에는 없었다. 1970년 후반에 전산화단층촬영장치(CT)가 도입됐는데,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인체의 단면을 영상화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환자 치료나 진단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CT만으로는 근육이나 조직을 구별하기 힘든 단점이 있었다.

지금은 PET와 MRI가 의료 영상의 새로운 장을 열며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다. 앞으로는 PET와 MRI 영상을 통합한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의료 영상분야의 최대 과제다. 이를 이용하면 인체 구석구석을 이해하고 각종 뇌 질환의 진단과 치료를 보다 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CT와 MRI 개발자들은 각각 노벨상을 탔다.

▶조 박사=전적으로 동의한다. 궁극적으로 뇌 세포 하나하나의 기능이 인간의 행동으로 표현되는 경로를 밝혀야 한다. 의료 영상에 지각 변동을 가져온 또 하나의 사건이 2000년에 있었는데, 소위 분자영상기술의 출현이다. 이는 DNA의 활동을 포함한 세포의 신진대사 기능까지 파악할 수 있게 했다. PET가 만드는 '마술'이다. 이를 MRI 영상과 통합하면 미래 의료기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욜레즈 박사=그런 연구가 하버드대와 가천의대에 의해 본격화하고 있다. 이는 두 기기의 약점을 보완하고, 전혀 새로운 치료 및 영상기법의 출현을 예고한다. 뇌 종양 환자의 치료를 예로 들어보자. 첫째, 뇌종양은 일반 뇌조직과 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하므로 다른 방법으로 그 위치를 찾아야 한다. 또 종양이 양성인지 악성(암)인지를 구별해야 한다. PET와 MRI 통합 영상은 이 두 가지를 명확하게 할 수 있게 해준다. 둘째, 종양 제거 과정이다. 지금까지 신경외과 의사들은 환자가 MRI 검사와 PET 검사를 따로 받게 한 뒤 수학적 방법을 통해 두 영상을 중첩하는 방식을 썼다. 이는 상당히 부정확하다.

PET와 MRI 통합 영상은 정확도를 높일 뿐 아니라 종양이 어느 정도 적출되고 있는지를 수술하면서 파악할 수 있어 수술의 완성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하버드대 연구팀은 PET와 MRI 사이에 수술실을 두는 시스템인 '아미고(AMIGO)'를 개발 중이다.

▶조 박사=가천의대팀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최고의 뇌 질환과 과학 연구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MRI 중 자장의 세기가 가장 센 7.0T(테슬러:자장 세기의 단위), 0.2㎜ 해상도의 MRI와 2㎜ 해상도의 PET 영상을 통합하면 인체 및 뇌 과학을 위한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기기가 될 것이다.

▶욜레즈 박사=하버드대에서는 음파를 이용해 인체에 외상을 입히지 않는 새로운 수술 기술도 아미고 시스템에 장착할 예정이다. 인체에 수술칼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100% 의료 영상에 의존해야 한다. 영상이 안 좋으면 엉뚱한 곳을 수술할 수 있다. 이 기술은 필요한 약물을 특정 조직에 주사 없이 투여한다든지, 세포를 활동하게 하는 데도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암 조직에 열을 투입해 괴사시킬 수 있다. 환자의 경우 외과적 수술 없이 국부 마취로 치료할 수 있다. 최근에 이 같은 방법으로 5~6일간의 입원이 필요한 자궁 종양을 몸 외부에 수술 자국 없이 제거했다. 이때 MRI와 PET를 함께 이용함으로써 종양의 조기 진단 및 해부학적 위치나 이의 특성까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뇌 질환과 간암.유방암 치료에도 적용할 예정이다.

▶조 박사=MRI와 PET 일체형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천의대가 개발하려는 것은 두 기기를 바짝 붙이고, 환자는 자신도 모르게 양 기기를 왕복하며 인체 영상이 촬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말이 쉽지 이 기기는 지금까지 나온 어떤 의료 장비보다 더 복잡하고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하버드대의 아미고는 PET와 MRI가 5~10m 떨어져 있고 수술침대가 1~2분 속도로 양쪽을 왕복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욜레즈 박사=하버드대는 2005년 말까지 우선 MRI와 수술실을, 2006년까지 PET와 접목할 계획이다. 완전한 시스템을 개발하려면 2~3년이 더 걸릴 것 같다.

▶조 박사=아직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인체 부위가 너무 많다. 그런 곳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면서 진단하고 치료하려면 개발해야 할 의료 장비가 많다. 외과 수술 없는 종양 제거 기술뿐 아니라 뇌 기능 분석, 더 나아가 뇌 기능을 조절할 수 있는 기기가 필요하다. 소위 신경 조종장치는 마치 전등을 '껐다' '켰다'하듯 뇌 활동을 조절함으로써 신경과적.정신과적 치료에 이용할 수 있다. 거꾸로 뇌가 컴퓨터나 기기를 작동시키는 장비를 개발할 수도 있다. 즉 생각만으로 전자기기나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진행.정리=박방주 과학전문기자

◆ 조장희 박사=인체 투시 영상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PET)를 세계 처음으로 개발했다.이 공로로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꼽히고 있다.그는 대학 졸업 뒤 평생 스웨덴과 미국에서 생활하면서도 한국 국적을 포기 하지 않았다.

◆ 페렌츠 욜레즈 박사=MRI나 PET 등의 영상을 수술과 치료에 이용하는 기술의 대가다. 인체영상을 계속 보면서 수술할 수 있는 ‘도넛형 실시간 영상 수술 MRI’ 를 세계 처음으로 개발했다.북미방사선학회에서 수여하는 최고과학자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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