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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서울광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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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광장(廣場)은 스스로 정체성을 갖기보다 그곳을 채우는 사람들의 활동에 의해 규정된다’. 이탈리아 도시건축학자 프랑코 만쿠조가 공저한 『광장』에 나오는 얘기다. 일단 만들어 놓고 꾸민다고 해서 모두 생명력 있는 광장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일 터다. 광장의 역할과 기능이 그만큼 다양한 까닭이다.

인류 문명사에서 광장의 기원으로 꼽히는 건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아고라(Agora)다. ‘시장에 나오다’ ‘사다’의 의미인 ‘아고라조(Agorazo)’가 어원이다. 하지만 장터 역할 외에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시민들의 일상 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사람이 모이는 곳’을 뜻하게 됐단다. 이후 중세와 근세를 거치면서 광장은 시민의 휴식처와 놀이터, 축제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성난 군중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곳이 되기도 한다.

이탈리아 로마의 스페인 광장은 젊은이들의 약속 장소며 휴식처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주인공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사랑을 속삭이는 배경이 된 바로 거기다. 반면 독일 베를린의 아우구스트 베벨 광장은 역사의 상흔(傷痕)을 안고 있다. 1933년 나치 돌격대 등에 의해 2만여 권의 금서(禁書)가 불태워진 독일판 ‘분서갱유(焚書坑儒)’의 현장이라서다.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광장의 기념물 동판에 “책을 불사르는 곳은 결국 인류도 불태울 것이다”고 적고 있다.

피로 얼룩진 역사적 사건의 장소였던 광장도 숱하다. 파리 바스티유 광장에서 군중의 분노가 폭발하고, 콩코르드 광장에서 루이 16세와 앙투아네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바로 프랑스혁명(1789년)이다. 1차 러시아혁명(1905년)은 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 광장에서 일어난 노동자 학살에서 비롯됐다. 중국 천안문 광장엔 1989년 민주화를 열망하며 모여든 대학생과 지식인, 시민이 무력에 짓밟힌 아픔이 스며 있다.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이 신고만 하면 집회나 시위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뀔 처지다. 서울시의회가 엊그제 이런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서울시가 재의(再議)를 요구해도 개정을 주도한 민주당이 다수여서 결과를 뒤집기는 어렵다. 개장 후 6년 남짓 동안 서울광장은 여가선용과 문화행사의 공간을 표방했지만 앞으론 어려울 성싶다. 이제 서울광장의 정체성이 ‘시위용 공간’으로 전락할 게 명약관화(明若觀火)해서다. 광장은 허물이 없는데 이용하는 사람들 탓에 오명(汚名)을 입게 됐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