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붓한 성탄절 보내기' 해프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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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법정 스릴러로 할리우드를 평정한 작가 존 그리샴. 이번엔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내기 위한 미국 중산층 부부의 눈물겨운 해프닝을 그린 소설을 독자들 앞에 내놓았다. 이야기의 도입부부터 마치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세무사인 크랭크는 지난해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려 본다. 눈사람 프로스티 세우기, 형식적인 크리스마스 카드 보내기, 반짝이 전구로 집과 정원 장식하기…. 현실적인 사람답게 돈 계산을 해보니 6천1백달러였고 이 중 자기 부부의 행복을 위해 의미있게 쓰여진 돈은 거의 없었다.

크랭크는 결심한다. 허영과 위선에 가득찬 크리스마스를 건너뛰고 대신 아내와 함께 열흘간 유람선에 몸을 싣기로. 마침 올해는 딸아이마저 평화봉사단에 참가하느라 집에 없었다. 크랭크 부부는 크리스마스의 부질없는 야단법석에 끼지 않는다는 사실에 오히려 오만한 자존심을 느낄 정도가 됐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한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에게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멸시에 가득찬 친구들의 시선 앞에 아내는 할 말을 잃어가고 동네 사람 어느 하나 참견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출발일을 앞두고는 딸아이의 귀국 전화마저 오게 되는데….

이 소설은 여전히 그리샴적인 특성을 구비하고 있다. 그의 전매특허인 법정 스릴러물과 달리 폭발음이나 살인, 음모와 추적 등은 없지만 독자를 흡인하는 것은 여전히 스릴러에 바탕을 둔 예기치 못한 사건이다.

그리샴의 이번 소설은 허영과 위선에 가득찬 미국 중산층의 크리스마스 세태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샴은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집요하게 꼬집는다기보다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공포와 불안, 그리고 이를 벗어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재미나게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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