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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으로 푸는 또 다른 한국史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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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면

이 책은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42) 교수가 1993년부터 10년 동안 전통시대 천문학 연구에 정력을 바친 결과물이다.

천문학을 역사와 결합한 이 작업은 높은 신빙성을 부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그가 프린스턴대에서 우주론 분야의 연구로 학위를 받고, 캐나다 토론토대의 이론천체물리연구소 객원교수로 일했다는 이력 때문만은 아니다.

저자는 국내 역사학계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그간 존재하지 않다시피한 고천문학(古天文學)과 천문역사학이란 영역을 자리매김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는 성실함도 높이 사야 하겠기 때문이다.

부제가 시사하듯 이 책은 천문기록에 담긴 한국사의 수수께끼를 천문학자다운 탐구심으로 접근하고 있다. 특히 한국사의 가장 큰 논쟁이라 할 수 있는 단군조선의 사실성 여부를 천문학 자료를 통해 분석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저자는 역사학계에서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논란만 되고 있는 『단기고사』(檀奇古史) 등의 역사책이 과연 조작된 것인가 아닌가를 엄밀한 과학적 방법으로 밝혀내고 있다. 천문현상은 수천년 전의 현상도 정확히 추적할 수 있고 따라서 사서의 신빙성까지를 판별해 낼 수 있다.

저자는 『단기고사』 등에 기재돼 있는 오행성(五行星) 관련 기록과 썰물 기록을 분석해 이들 천문현상이 허위가 아닌 실제 일어난 것으로 결론짓고 있다.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조심스럽게 단군조선의 기록을 신화가 아닌 역사적 사실이라 주장한다. 또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등장하는 일식 기록을 추려내 『삼국사기』의 천문기록이 중국의 기록을 베낀 것에 불과하다는 일본 학자들의 견해를 반박하고 있다. 삼국시대 일식이나 홍수 기사 등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과학적인 연구는 그동안 천문학 자료를 등한시해 온 역사학계에 새로운 견해를 제시해주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 크다.

다만 신라의 일식 최적 관측지가 양쯔강 유역, 백제는 발해만 유역으로 나타났다 해서 삼국의 강역이 중국으로 넓혀질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추정하고 있지만 좀더 논리적 근거가 필요하다. 천체관측과 같은 중요한 일은 수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상식이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그러나 과학적 데이터는 마치 사회학적 통계의 오류처럼 한 그루의 나무로 숲 전체를 설명하려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게 한다.

천문기사의 분석 자료만 가지고 신라를 비롯한 초기 삼국의 강역을 중국 지역으로 비정하는 것은 다른 사료와 비추어 무리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현재로서는 천문학과 역사를 결합하는 저자의 열정이 역사적 설명을 토대로 향후 한국 고대사의 일부가 다시 쓰이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청동기시대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를 통해 한국의 독자적인 천문학이 있었음을 소개해 과거 우리 역사에도 빛나는 천문학이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전통시대 한국 천문학 관련 서적이 드문 상황에서, 드물게 보는 천문학서란 점 외에도 산뜻한 표지와 내용 중간의 선명한 사진, 그리고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수께끼 풀이식의 설명 방식 등이 어우러져 단연 눈길을 끈다.

정성희(한국정신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우리 조상은 하늘을 어떻게 보았는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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