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단 工員서 사장·교수로 '굳센 女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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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산업용 테이프를 생산하는 경남 양산시 상북면 상삼리 화인테크놀리지의 서영옥(徐瑛玉·47·사진)대표는 말단 공원에서 시작해 10여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어엿한 기업의 대표이자 박사에 겸임교수인 맹렬 여성이다.

그녀의 회사는 20여명의 직원이 각종 공산품의 표면보호를 위해 사용하는 산업용 테이프를 연간 40억원어치 생산하는 전형적인 중소기업체.

하지만 8개의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ISO 9002, QS 9000 등을 인증받았으며 지난 7월에는 중소기업청으로 부터 기술혁신형 중소기업(INNO-BIZ)에 선정되는 등 기술력을 인정 받았다. 부산공업전문학교 화공과를 졸업한 그녀는 1982년 부산 영도에 있던 전기공사용 접착 테이프 회사에 말단 사원으로 들어가 선업용 테이프와 첫 인연을 맺었다.

"하루종일 지독한 화공약품 냄새와 씨름하다 보면 후각이 마비될 정도였지만 접착제가 테이프 성능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분야라는 것을 깨달았죠. "

테이프에서 접착제의 중요성을 절감한 그녀는 이때부터 화공기사·화약류 관리기사 등 7개의 자격증을 따고 전공 공부를 계속하는 등 접착제 연구에 파고들었다. 그녀는 87년 창업의 꿈을 안고 회사 퇴직금과 주변에서 빌린 2천만원으로 테이프 제조기 한대를 구입했다. 첫 생산한 테이프 한 롤을 들고 버스를 타고 가서 납품한 뒤 3만원을 받고 돌아오면서 감격스러워 한없이 울었다고 한다.

10여년 테이프 생산기술을 쌓은 그녀는 98년 마침내 화인테크놀리지를 창업한다. 창업 초기에는 각종 부품과 표면 보호용 테이프만 생산했으나 지금은 모니터·브라운관·가전제품·휴대전화 보호용 테이프 등 10여종을 생산한다.

이 회사의 제품은 접착력은 높지만 한번 붙였다가 떼내도 전혀 흔적이 남지 않는 점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다. 1억원으로 시작한 자본금이 지금은 15억원으로 늘어났고 일본·중국·필리핀·말레이시아 등 세계 10여개국에 대한 수출물량도 연간 10억원에 이른다. 그녀는 연간 해외출장 일수가 1백50일에 달할 정도로 해외시장 개척에 노력하고 있다. 회사의 성장은 그녀가 바이어나 거래처 사람을 만날 때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유감 없이 발휘한 덕분이다.

바이어가 술을 마신 다음날은 전복죽·인삼즙을 대접하고 바이어 아내의 작은 선물을 챙기는가 하면 생선회를 좋아하는 충북 산골짝의 거래처에 종종 생선회를 사들고 갈 정도다.

이러한 마음 씀씀이 때문에 그녀가 말단 사원으로 있을 때부터 20여년 거래한 고객이 있을 정도다. 전공 공부를 계속해 지난해 동아대 대학원에서 '점착제(粘着劑) 제조와 특성연구'라는 논문으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97년부터 경남정보대학에서 겸임교수로 공업화학을 강의하고 있다.

"사무실 근무를 선호하는 학생들에게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생산현장을 중요하게 여기라고 강조하느라 목이 아플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보릿고개를 넘은 데는 기술자들의 공헌이 컸습니다"

기술축적을 위해 애쓰는 사원들을 위한 徐대표의 지원은 눈물겹다. 대학·대학원에 다니는 사원에게는 학비를 지원해 주며 사원 자녀들이 대학을 가도 장학금을 준다.

사원들의 복지에도 관심이 높다. 올해 안에 이전하는 양산 어곡공단 내 새 공장(부지 3천7백평, 건평 1천평)에는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오갈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복지동을 만들어 찜질방도 넣었다. 공장을 이전하면 장애인 고용도 늘릴 계획이라고 徐대표는 밝혔다.

양산=김상진 기자

daed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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