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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빈소·인터넷에선 “친구 같던 앙 선생님” 10~20대 추모 열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선생님이 디자이너인지 몰랐어요. 친근하고 코믹한 이미지가 그냥 좋았어요.”

13일 서울대병원에 차려진 고 앙드레 김 빈소를 찾은 초등학생 이헌승(12)군의 말이다. 12일 작고한 앙드레 김은 초등학생조차 친근함을 느끼게 하는 ‘70대 소년’이었고, 젊은이들의 친구였다. 고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이날 인터넷과 트위터에선 하루 종일 관심과 애도의 글이 이어졌고, ‘앙드레 김 별세’가 각 포털 검색어 맨 앞자리를 지켰다. 일반인 조문이 제한된 서울대병원 빈소에도 10~20대들이 조문을 와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앙드레 김 선생님이 왜 유명하고 어떤 사람인가요(eldk67)” “이제 성대모사로밖에는 그분 목소리를 들을 수 없네요(ppo32)” “6~7년 전 우연히 봤을 때 이웃집 아저씨처럼 환하게 웃어주셨다(qkdaltnr777)” 인터넷엔 고인에 대한 궁금함과 아쉬움을 표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트위터에도 “만나본 사람은 존경했고, 그와 일해본 사람 중엔 그를 욕하는 사람이 없었다(yeojy)”는 등의 짧은 추모글이 수시로 올라왔다.

서울대 장례식장 직원 김수진(25)씨는 “빈소를 찾은 일반인의 절반 가량이 10~20대 젊은이였다”고 전했다. 여고생 이은솔(17)양은 “패션에 관심이 많아 친근하게 느꼈던 분이 돌아가셔서 놀라운 마음으로 뵈러 왔다” 고 말했다. 정진영(16)군은 친구들과 빈소 주변을 서성댔다. 정군은 “‘앙 선생님’은 나이는 많지만 왠지 친구처럼 느껴져 왔다”고 말했다.

‘앙 선생’은 사후에도 70대 원로의 죽음에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의 추모 열기를 불러일으킨 또 하나의 기록을 남겼다. 이에 대해 하지현 건국대(신경정신과) 교수는 “거리감 없는 어른에 대한 젊은이들의 애정 표현”이라고 풀이했다. 또 1999년 옷로비 사건으로 위기를 맞았지만 김봉남이라는 본명이 알려지며 오히려 대중과 교감하는 기회가 됐다. 고민구 KBS 예능PD는 “연예인들의 단골 성대모사 대상이 되고, 고령에도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친구 같은 어른’이어서 예능프로에 모셔도 젊은이들이 좋아했다”고 말했다.

후배 디자이너인 이상봉씨는 “평소 교류는 뜸했지만 고인과 관련된 천진난만한 후일담을 많이 들어 어려운 선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며 “화장을 하지 않고는 누구도 만나지 않을 만큼 자기관리가 확실해 그의 나이를 가늠하지 못하는 후배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한편 유족 측은 당초 발인을 16일 오전 6시로 발표했으나, 15일 오전 6시로 하루 앞당겼다.

이도은 기자·박혜린 대학생 인턴기자



앙드레 김 ‘마지막 직업’은 본지 j섹션 객원기자

패션 디자이너이자 만능 엔터테이너, 연예계의 대부였던 앙드레 김의 마지막 직업은 기자였다. 그는 중앙일보 토요섹션 j의 객원기자로서 영화배우 윤정희, 피아니스트 서혜경씨 등을 인터뷰했다. 그는 이후에도 “탤런트 문근영이나 서우와 인터뷰하고 싶다”며 만년에 새로 찾은 직업에 열의를 보였으나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앙드레 김은 j섹션의 출범과 함께 객원기자로 위촉될 때도 이미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였다. 거동이 불편해 자신의 사무실 책상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뷰할 때의 눈빛만큼은 어느 젊은 기자들보다 빛났다. 청력이 안 좋았던 그는 인터뷰를 위해 “보청기까지 새로 장만했다”고 앙드레 김 아뜰리에의 임세우 실장은 전했다. 질문도 적극적이었고 철저하게 사전 준비를 한 듯 상대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으며 진행도 매끄러웠다. 인터뷰 상대의 가족사까지 꿰뚫고 있었다.

인터뷰 기사가 나간 뒤에도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전화를 걸어 아쉬웠던 점을 토로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때론 기사를 정리한 기자를 나무라기도 했다. 앙드레 김 인터뷰의 최대 강점은 무엇보다 따뜻함이었다. 그는 인터뷰 상대에게서 따스한 사람의 온기를 찾아내려 애썼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향기 나는 관계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어 했다. 프랑스 디나르에서 부음을 접한 윤정희씨는 고인을 애도하면서 “평소에도 항상 뭔가를 주고 싶어 하셔서 남편(백건우씨)과 동생들 옷까지 만들어 주셨는데, 인터뷰 때도 부모님과 남편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져주셔서 참 고마웠다”고 말했다.

앙드레 김은 인터뷰 후 사진을 찍을 때도 항상 상대가 더 멋지게 나올 수 있도록 배려했다. 비록 기자로 활동한 것이 한 달도 못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는 많은 후배 기자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팡타스틱’한 기자였다. 

박종근·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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