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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Focus] 인정만으로도 배부른 빵집, 대전 성심당 임영진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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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유지상·이상은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성심당은 대전의 랜드마크 빵집이다. 상호를 잊었다면 “따끈한 빵을 무제한 시식할 수 있는 곳” 아니면 “그날 팔다 남은 빵은 모두 기부하는 곳”을 물으면 누구나 대전역 앞 으능정이 거리의 성심당으로 안내해 준다. 성심당은 점포 한 곳의 매출이 연 60억원. 하루 평균 1500만원 이상의 매상을 올리는 곳이다. 요즘 잘나가는 대기업의 유명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브랜드도 근처에 얼씬 못하게 제압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속 탁구는 빵 스승인 팔봉 선생에게 이렇게 묻는다. “할배, 우리 어메가 세상은 결국엔 착한 사람이 이기는 거라던데 이게 참말입니꺼?”그 대답을 현실 속 ‘제빵왕 임영진’ 대표에게서 감지할 수 있었다.

● ‘성심당’의 시작은 어땠나요.

1956년 대전역 앞에서 문을 연 ‘찐빵집’ 성심당.

“아버지(고 임길순씨)가 1956년 작은 찐빵집으로 시작했어요. 5년이 지나고서야 제과점 형태를 갖췄고요. 처음 차렸을 때부터 그날그날 남은 찐빵은 배고픈 이웃들에게 나눠줬어요. 화제였죠. 지금과 달리 그 시절 음식은 생명을 상징했으니까요.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새로운 삶을 얻었다’며 감사했기 때문이에요. 아버지는 함북 함주가 고향인데 1950년 흥남 철수 때 마지막 배(메러디스 빅토리호로 피란민 1만4000명을 태워 철수)에 가까스로 올랐어요. 그리고 6년 뒤 대전역 앞에 작은 찐빵집 ‘성심당’을 차렸죠.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직원들의 집단파업으로 일손이 모자라 빵집 일에 뛰어들었어요. 처음엔 어려웠지만 빵의 미묘한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어요. 반죽법과 발효상태에 따라 천의 얼굴을 했으니까요.”

● 36년간 만든 제품 중 최고 히트상품은 뭔가요.

“성심당을 키운 일등 공신 세 가지가 있습니다. 1980년 출시한 튀김소보로가 그중 하나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빵들의 장점을 합쳐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단팥빵 속 달콤한 팥, 소보로빵의 바삭한 껍질, 찹쌀 도넛의 쫄깃한 반죽을 합쳐 ‘튀김소보로’를 만들었죠. 신기한 빵이 나왔다”며 손님들이 번호표를 받아 줄을 섰어요. 원래는 빵이 식으면 마지막에 초콜릿시럽을 끼얹어 코팅하려고 했는데, 식기 전에 다들 집어가는 바람에 초콜릿시럽은 한 번도 못 써봤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대로 팔고 있죠.

● 나머지 대표 상품도 궁금하네요.

82년 일본 신혼여행 때 후쿠오카의 ‘몽블랑’ 빵집에서 새로운 케이크를 봤어요. 당시 우리나라엔 딱딱하고 느끼한 버터크림 케이크뿐이었는데 그곳에서 본 생크림 케이크는 부드러우면서 달지도 않아 충격이었죠. 당장 생크림 케이크 만드는 법을 배워 와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했어요. 15일을 진열해도 끄떡없던 버터크림 케이크와는 달리 생크림은 하루만 넘겨도 상했죠. 고민 끝에 케이크 시트만 미리 만들어 놓고 주문 즉시 손님 앞에서 생크림을 올렸어요. 손님들이 몰려 서서 구경했죠. 생크림 짜는 데 3분이 걸려 ‘3분 케이크’라는 이름을 붙였고, 신기한 케이크라고 입소문이 났어요. 마지막은 포장빙수입니다. 85년에 개발했는데 당시엔 테이크 아웃의 개념이 없었어요. 여름이면 어르신들은 양은냄비를 가져와 빙수를 담아 갔어요. ‘더 편하게 먹게 할 순 없을까’ 고민하다 병원에서 링거 감쌀 때 쓰는 스티로폼이 떠올랐죠. 스티로폼 통을 만들어 빙수 봉지를 넣고 뙤약볕을 걸어다녔어요. 철봉에도 매달아 놓고. 3시간이 지나도 안 녹고 그대로더라고요. ‘3시간 빙수’라고 이름 붙였죠. 당시 대전 사람들은 서울 갈 때 포장빙수를 일부러 들고 갔어요. “서울에도 없는 게 대전에 있다”며 자랑했죠.”

● 어려움도 많았겠습니다.

“그럼요. 빵을 기부하는 것조차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은 빵 가지고 생색낸다’부터 ‘썩은 빵 아니냐’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1987년 6·10항쟁 때예요. 성심당 바로 맞은편이 주교좌 성당인데 당시 주교좌 성당은 서울 명동성당 같은 역할을 했어요. 시위 때면 빵집 주변까지 온통 마비돼 빵을 못 팔았어요. 그날도 빵이 몽땅 남은 날이었어요. 학생과 전경은 서로 악에 받쳐 있었죠. 저희는 양쪽 모두에게 빵을 나눠줬어요. 굶주린 학생들도 안쓰러웠고, 전경들도 따지고 보면 학생들과 같은 나이인데 마음이 아팠거든요. 그런데 결국 학생들에게 빵을 나눠준 것 때문에 경찰서에 끌려갔어요. ‘부정식품 판다’는 누명을 쓰고서요. 경찰서에선 부정식품이란 증거가 없자 보건 연구기관에 의뢰했어요. 검찰에까지 올라갔는데 혐의가 없으니 결국 검찰에서 ‘무고하다’는 결과가 나왔죠.”

● 모든 비즈니스엔 라이벌이 있게 마련인데요.

“요즘 동네 빵집, 일명 ‘윈도 베이커리’가 문을 닫고 있습니다. 대자본의 프랜차이즈 제과점 때문이죠. 성심당 옆에도 92년 서울 강남의 ‘뉴욕제과’ 체인이 들어왔다 2년 만에 철수했어요. 그 후로 다른 프랜차이즈는 들어올 시도를 안 해요. 사실 규모와 자본으로 치면 저희가 대형 프랜차이즈 기업을 이길 수 없어요. 그래서 고민했습니다. 가장 성심당다운 강점이 뭔지. 답은 ‘갓 나온 신선하고 따끈한 빵’과 ‘동네 빵집만의 푸근함’이었어요. 냉동 생지를 공급받는 게 아니라 저희가 직접 반죽한 생지를 써서 그 자리에서 구워내잖아요.

● 무제한 빵 시식은 어떻게 나온 아이디어 인가요.

일단 빵이 나오면 종을 크게 치면서 알려요. 그리고 갓 구운 뜨끈한 빵을 손님들에게 마음껏 먹도록 해요. 간혹 직원들이 “아깝다”며 시식에 제한을 두자고도 해요. 시식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한 뒤 그냥 가는 손님도 많거든요. 하지만 야박하게 구는 순간 동네 빵집이 가진 매력은 사라져요. 저희 집 빵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큼지막해요. ‘유행에 맞게 작고 예쁘게 만들까’ 흔들린 적도 있지만 성심당다운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날 팔고 남은 빵은 모두 기부하는 것도 같은 이유예요. 기부하는 빵을 액수로 치면 한 달에 1000만원 정도 돼요. 매주 일요일 대전역 노숙자들에게 빵 250개를 선물할 땐 모자라서 새로 만들어 가고요. “다음 날 반값에 팔면 500만원이라도 남는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500만원보다는 사랑을 나누는 가치가 더 크다고 믿어요. 그게 저희만의 여유고요. 감사하게도 둘 다 성심당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됐어요. 무제한 시식 때문에 빵집이 항상 붐비니 궁금한 마음에 더 찾고, 남은 빵을 기증하는 게 알려지며 ‘성심당은 남은 빵 안 판다’는 소문이 났죠.”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주연을 맡은 윤시윤.

●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인기가 영향을 미치나요.

“단팥빵·소보로빵·크림빵의 매출이 2배씩 늘었습니다. 드라마에 등장한 빵들이죠. 질문도 많이 받아요. 구일중(김탁구의 친아버지이자 제빵의 달인)이 빵 만들기 전 두 팔을 벌린 채 손가락을 움직이잖아요. ‘실제로도 그렇게 하느냐’고 손님들이 묻는데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온도와 습도를 재는 모습을 극대화해 표현했다고 봐요. 그 시절(1970∼80년대)엔 시설이 지금 같지 않아 온도 하나, 습도 하나에도 세심히 신경썼어요. 같은 반죽이라도 온도와 습도에 따라 전혀 다른 빵이 되거든요. 젊은 직원들에겐 꼭 챙겨 보라고 해요. 레시피로만 빵을 배운 요즘 사람들이 제빵인의 기본 정신을 배울 수 있는 기회죠.”

● 궁극적인 목표는 뭔가요

“중국에서 1년이면 400여 명의 제빵인이 찾아옵니다. 오면 기술부터 배우려고 하죠. 정말 알려주고 싶은 건 따로 있어요. ‘남을 밟지 않으면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거예요. 성심당 사훈이 ‘모두에게 좋은 일을 하십시오’예요. 주인만 좋아서도, 손님만 좋아서도 안 돼요. 직원들까지도 좋아야 합니다. 성심당엔‘한가족신문’이란 게 있어요. 일주일 동안 자기에게 일어난 소소한 일들을 공동 블로그에 올리고, 월요일 회의시간엔 그 블로그를 바탕으로 신문을 만들어요. 직원 한 명 한 명을 알 수 있는 방법이죠. 지난달 한 직원이 사망했을 때 다른 직원들이 그 친구를 위한 추모신문을 만들었어요. 함께 찍은 사진을 모으고 편지를 썼는데 30장이 넘었죠. 가슴이 찡했어요. 저는 빵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어요. 임영진은 많은 사람 중 한 명일 뿐이고 성심당 역시 지구 밖에선 점 하나도 안 되는 곳이죠. 하지만 빵으로 사랑을 나눔으로써 성심당이 대전을 변화시키고, 저를 찾은 제빵인들은 자기 도시에 또 다른 성심당을 만들어 간다면, 언젠가는 사랑이 가득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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