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정책②기업정책]대기업 규제 李·鄭 "풀어야" 盧·權 "이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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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후보의 기업정책관을 들어보면 그가 어떤 눈으로 경제를 보는지, 특히 시장경제체제 속에서 기업과 정부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정도(正道)경영에 관해 집단소송제를, 경제력 집중에 관해 출자총액제한을, 그리고 기업부담과 관련해 법인세 등에 대한 의견을 들어 대선후보들의 기업관을 짚어봤다.

후보 단일화 등 최근 정치판도와 관련해 가장 관심을 끌 부분은 민주당 노무현(盧武鉉)·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후보의 생각이다. 기업정책에 관한 한 매사에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두 사람이 후보 단일화를 하는 경우 기업정책을 어느 후보의 생각으로 수렴해 나갈 것인지가 관심이다. 지금까지 표명된 입장들을 보면 웬만한 머리로는 두 후보 간의 정책 조화나 정책 연대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鄭후보는 기업의 자율성 보장 내지 부담 축소에 가장 강한 의견을 갖고 있다. 출자총액제한 등 기업규제는 풀어야 하고, 법인세는 낮춰야 한다고 본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는 鄭후보와 비슷하다. 다만 규제완화나 법인세 인하 등을 여건 변화에 맞추어 좀 천천히 하자는 생각이다.

盧후보는 기업에 관해 다소 부정적인 시각이 감지된다. 규제완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규제완화에 대한 전제조건이 많다.

기업, 특히 재벌들이 가장 꺼릴 후보는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후보다. 집단소송제나 출자총액제한 등 기업을 조이는 건 강화·도입하고 법인세 인하를 통한 기업부담 줄이기는 반대하고 있어서다.

◇집단소송제 도입=집단소송제 도입 여부와 그 도입의 속도 및 강도 등에서 후보의 견해가 명확히 갈린다. 이 제도를 얼마나 긍정적으로 보는지, 그래서 도입을 서둘러야 하는지로 보면 權-盧-鄭-李후보 순으로 생각이 다르다.

李후보는 집단소송제 도입을 일단 '시기상조'라고 본다.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기에는 우리 기업의 경영상태가 아직도 투명하지 않아서다. 그래서 제도 도입을 서두르기보다는 소송남발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엄격한 장치를 만드는 한편 분식회계에 대한 감독과 처벌을 강화하는 등 경영투명성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할 때라고 본다.

鄭후보는 재계 출신 후보로서는 의외로 이 제도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기업주의 독단 경영의 폐해를 줄이고 합리적 지배구조를 모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단계적으로 도입하자"는 의견을 내고 있다. 준비기간을 가지고 시행하면서 적용대상을 점차 넓혀가자고 한다.

盧후보는 '불법 경영을 예방하고 소액 투자자 보호를 위해' 제도 도입을 서두르자는 입장이다. 일단 도입을 하고 소송 남발 등의 문제가 생기면 보완해 나가면 된다는 것이다. 특히 국회에 계류돼 있는 정부 안을 '즉시 시행'하자고 주장한다.

權후보도 '즉시 도입'하자는 입장에서는 盧후보와 유사하다. 그러나 정부 안보다는 소송대상인 경영행태를 강화하고 대상기업도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해 기업을 다분히 부도덕하게 보는 듯하다.

◇출자총액제한=경제력 집중 내지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에 관한 인식을 짚어보기 위해 재벌규제의 대표격인 출자총액제한에 관해 물었다. 대부분의 후보들이 출자총액제한을 완화하려면 기업의 경영행태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기업경영의 현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이 규제를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관한 입장이 달리 나온다.

'이 제도를 유지해야'에서부터 '철폐해야'까지 순서로 나열해 보면 權-盧-李-鄭후보 순이다. 權후보는 "완화하면 재벌의 경제력집중이 가속할 것"이라며 제도에 손대는 걸 반대한다.

盧후보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말하고는 있으나, 향후에 여건이 나아지면 단계적으로 완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까다롭거나 자칫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조건이 많다. 정부의 감독과 시장규율이 얼마나 유효한가를 감안해 '단계적으로 완화하되, 재벌이 계열사의 독립경영체제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李후보는 이 제도가 경제력집중 완화에 기여한 것이 별로 없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향후 금융기관의 경영감시가 강화되고 기업경영이 투명해지는 것"에 맞추어 제도를 완화해 나간다는 생각이다.

鄭후보는 외환위기를 겪고난 이후에 재벌들이 "더 이상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새로운 사업기회를 확보하고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이 제도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인세 인하=후보들의 생각이 출자총액제한 완화와 유사하게 나뉜다. 鄭후보가 법인세 인하에 대해 가장 적극적이다. 그는 "우리나라 법인세가 너무 높다"고 본다. "법인세를 낮추면 경제가 활성화돼 세수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李후보는 법인세 인하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정도다. 외국자본 유치와 관련해 "경쟁국과 비교해 필요하면 인하하겠다"는 생각이다.

盧·權후보는 법인세 인하에 반대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의 법인세가 높지 않고 또 법인세를 낮추면 결국 서민의 세 부담이 늘어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盧후보는 재정 현실을 감안할 때 법인세를 낮추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權후보는 아예 법인세를 인상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내비친다.

특별취재팀

econopal@joongang.co.kr

◇특별취재팀(경제분야)=김정수 경제전문기자, 중앙일보 경제연구소

◇자문=김영용(전남대 경제과)·김종석(홍익대 경제과)·박태호(서울대 국제지역원)·전주성(이화여대 경제과)·정갑영(연세대 경제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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