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私조직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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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치인 중심의 사조직이 요즘 논란의 대상이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주요 대선후보 3명의 사조직들에 대해 폐쇄 및 활동중지를 명령했다. 사조직의 불법 선거운동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사조직 측은 정당한 자발적 모임에 대한 부당한 탄압이라고 맞서고 있다.

법 차원에서는 사조직 폐쇄 명령에 찬반 양론이 있을 수 있다. 한편으로 볼 때, 후보를 위한 사조직을 설립할 수 없다는 조항이 선거법에 명백히 있다. 사조직이 특히 불법적 선거비 지출의 온상이 되고 법 테두리를 벗어난 일방적 선전·비방의 장이 된다면 더욱이 폐쇄시켜야 할 근거가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할 때, 시민의 존엄한 권리인 결사 및 표현의 자유를 너무 침해해선 안된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사조직 금지는 자칫 참여민주주의 이상에 제동을 거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상반된 양 시각 중 하나를 선택하기란 힘든 일이다. 하지만 한국정치의 절실한 과제인 제도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후보 개인중심의 사조직은 장점보다 폐해가 크다. 후보가 사조직에 의존해 선거운동을 할 때 정치의 공식적 제도 틀이 무시·침식된다. 특히 정당의 역할이 약화되고 정당의 제도화가 깨진다.

정치가 제도 틀 속에서 이뤄져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규칙과 원칙이 존중되고 예측이 가능한 정치, 즉 상식의 정치를 위해서다. 정치인이 정치를 제도 밖으로 끄집어낼 때 일반시민의 목소리가 증폭될 것이라고 낙관할 수 있을까. 오히려 몇몇 개인으로서의 정치인들이 편의에 따라 자의적으로 정국을 주도하고 각자 책략에 따라 정국을 재편하게 될 위험성이 크다. 정치의 탈(脫)제도화나 비(非)제도화는 민주주의의 반(反)명제인 정치의 개인화 혹은 사유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정치인 개인중심의 사조직이 제도화를 막는 가장 근본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사조직은 한국정치의 제도화가 이미 안 이루어져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정당체제가 제도로써 안정감 있게 고착되고 기능하지 않기 때문에 후보들로서는 사조직을 가동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사조직의 횡행이 원인이기보다 결과인 면이 크지만, 어쨌든 사조직들로 인해 정치의 제도화가 더욱 망가지는 악순환이 연속된다는 데에 사안의 심각함이 있다.

근본 원인은 아니더라도 제도화를 더욱 파괴시키는 사조직을 배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선관위의 명령으로 인위적으로 그 뿌리가 뽑히지는 않을 것이다. 공식적 간판을 내릴지는 몰라도 갖가지 편법을 동원해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는 기능을 유지할 것이다.

정당이 정치의 제도화된 틀을 제공하지 못하는 한, 정당 구성원이 판세에 따라 너무나 쉽게 소속 정당을 버리고 새 틀을 급조하는 한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으로서는 정당조직에만 의존할 수 없다. 그는 자기에게 개인적 충성을 바치는 사람들로 사조직을 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조직이 흔들거리고 일체감이 약한 정당에 속한 후보일수록 사조직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사조직을 폐쇄시키려는 선관위의 노력에 덧붙여 한국정치, 특히 정당정치의 제도화를 위한 근원적 고민이 요구된다. 사조직의 강제 폐쇄는 표피적 해결방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제도 틀을 존중하며 그 속에서 운용의 미를 찾는 의식을 정치인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우리의 논의가 집중돼야 한다.

정당 틀의 유지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정치인이 굳이 사조직에 의존하지 않도록 조건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정치의 제도화는 아울러 후보 개인중심의 사조직과 진정한 시민단체를 명확히 차별시켜줄 수 있다. 정치인들은 정착된 제도 틀 속에서 국정을 논하고 시민단체는 제도 밖에서 자발적·중립적·균형적으로 제도정치를 감시하는 것이 바람직한 민주주의 상(像)이다. 이런 모습이 현실화된다면 개인 사조직과 시민단체를 혼동하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결국 결론은 정치의 제도화로 귀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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