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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회계와 전쟁'선포한 中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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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내년 봄 물러날 주룽지(朱鎔基)중국 총리가 '분식회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朱총리는 지난 19일 홍콩에서 개막된 세계 회계사대회에 참석해 "중국의 회계 현실이 많이 뒤떨어져 있다는 걸 인정하지만 우리의 결단은 단호하다"며 눈썹이 꿈틀거리는 특유의 엄격한 표정을 지었다. 원고에 없는 즉석연설이었다.

그러면서 "새로 건립한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의 국가회계학원에 직접 가서 '어떤 압력을 받더라도 분식회계는 절대 안된다'고 귀가 따갑게 말하고, 쓰기 싫어 하는 휘호까지 내 손으로 써줬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 순간 전세계 회계사 5천여명이 앉아있던 컨벤션센터에선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朱총리의 발언은 중국의 불투명한 회계관행에 의구심을 품어왔던 국제사회의 의표를 찌르는 것이었다.

올 들어 미국에서 엔론·월드컴 등 대형 회계장부 조작사건이 잇따르자 해외에선 중국 정부의 통계나 은행 부실채권 규모 등에 의혹을 제기하면서 "다음 차례는 중국"이라고 주장했다.

오죽하면 朱총리가 '중국 경제가 모래 위에 세워졌다'는 '중국 붕괴론'에 "중국을 얼마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화를 냈을까.

74세의 朱총리는 이날 권력자가 어떻게 물러나야 하는지 유감없이 보여줬다.

서너달 뒤 자신의 희망대로 모교인 칭화(淸華)대로 돌아가 책을 벗 삼을 계획이지만 오후엔 40여분간 홍콩의 정·재계 인사들을 만나 "필요하다면 3천억달러의 외환보유고를 동원해 홍콩 경제를 도울 것"이라고 역설했다.

"홍콩 정부에서 채권을 발행한다면 내가 맨 먼저 사겠다"고 사기를 북돋우기도 했다.

朱총리는 1998년 총리직을 맡은 이후 중국의 개혁·개방을 진두·지휘하는 한편 당·정 간부의 부패 척결에 노심초사해 왔다.

그래서 얻은 게 '중국 경제의 차르(러시아 황제)'라는 별명이다. 최근엔 장쩌민(江澤民)국가주석과 리펑(李鵬)총리가 권력에 미련을 보이자 자신의 퇴진을 일찌감치 선언해 중국 지도부의 세대교체를 간접적으로 압박했다.

朱총리의 "분식회계와 가짜 통계를 없애겠다"는 약속이 얼마나 실천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퇴진 날짜를 잡아놓은 노(老)지도자의 모습은 여전히 당당했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yaslee@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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