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육 '부익부 빈익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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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자녀 한명이 초등학교부터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들어가는 학비가 학교·전공에 따라 최대 5억원까지 차이가 난다면 믿을 수 있을까. 거짓말 같지만 일본이 그렇다.

일본의 국·공립학교는 학비가 저렴하지만 명문 사립학교들은 상당히 비싸다.

야노(失野)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게이오(慶應)대 부설 초·중·고를 거쳐 데쿄(帝京)의대(6년)를 졸업하기 위해선 18년 동안 학비만 5천3백여만엔(약 5억3천만원)이 필요하다. 초등학교 7백48만엔, 중학교 3백39만엔, 고교 3백2만엔, 대학 3천9백여만엔이다.

그러나 집 근처의 공립 초·중·고·대학(문과)을 다니면 최저 2백46만엔이면 족하다. 다른 사립 초·중·고의 학비도 3년간 2백여만엔 이상은 든다.

일본의 사립학교는 특히 기부금·학교채 구입비 등 '보이지 않는 학비'가 많아 학부모들은 허리가 휠 정도다.

그런데도 자녀들을 사립학교에 보내기 위해 안달하는 부모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사립중 입학시험을 위해 초등학교 4학년부터 학원강습·개인교습 등을 받는 학생들도 많다. 올해 수도권 초등학교 6년생의 13%가 사립중에 응시했다.

마쓰시마 가쓰히토(松島勝人) 야노연구소 연구원은 "경제불황으로 불안심리가 가세해 일본의 학력(학벌) 중시 풍조가 더욱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공립학교보다 입시공부를 훨씬 많이 시키는 사립학교에 보내 도쿄(東京)대 등 세칭 명문대에 입학할 확률을 높이려는 것이다. 초등학교에만 입학하면 대체로 동일계열의 중·고·대학까지 입학이 보장되는 게이오 등 일부 명문사립대 계열 초등학교는 입학부터 전쟁이다.

빠듯한 월급으로 자녀를 게이오 초등학교에 보내는 한 중견 공무원은 "자식의 미래를 위해 보험을 들었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핵가족이 일반화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이 때문에 가계의 교육비 부담은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교육 투자'를 아예 포기하는 가정도 늘어 교육에서조차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된다는 우려도 커졌다.

입시 위주의 암기식 교육보다는 창의성·체험을 강조하는 일본정부의 '유토리(여유 있는) 교육' 정책은 점점 외면받고 있다.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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