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조훈현 '복수 혈전' 왕레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4면

"중국기사들 3명이 조훈현9단을 포위한 것이냐,조훈현9단이 중국기사들을 각개격파하고 있는 것이냐."

이번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준결승전이 시작되기 전 중국의 매스컴에 등장한 기사 한토막이다. 그 기사는 조훈현9단의 추첨 운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왕위후이(王煜輝)7단으로선 조훈현9단을 꺾기 어렵다. 후야오위(胡耀宇)7단은 기세가 좀더 강렬한 맛이 있지만 조9단의 변환술과 예측불허의 강타를 막아내기엔 아직 부족한 감이 있다. 조훈현과 5대5로 싸울 인물은 독창적인 바둑을 구사하는 왕레이(王磊)뿐일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왕위후이 대신 후야오위가 먼저 맞붙는다면 중국의 우승확률은 좀더 높아질텐데 아쉽다."

올해의 삼성화재배는 예선전부터 중국기사들이 초강세를 보이며 8강전엔 6명, 준결승전엔 3명이 오르는 등 쾌조의 흐름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마지막 한명 남은 한국의 조훈현9단 때문에 깊은 근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중국은 지난 2년여 동안 세계대회 우승컵을 만져보지 못했다. 대신 한국은 이 기간중 '17연속 우승'이란 신기원을 이룩했으니 중국 측의 노심초사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준결승전은 중국 측의 분석대로 흘러갔다. 조훈현9단은 왕위후이7단을 2대0으로 완파했고 중국랭킹 1위의 왕레이8단 역시 후야오위7단을 2대0으로 꺾었다.

이제 결승전은 어찌 될 것인가.

조훈현9단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귀신이 돕는 기사'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는 8강전에서 중국의 뤄시허(羅洗河)9단에게 99.9% 진 바둑을 역전시켰다. 그 바둑의 역전 코스는 뤄시허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연속 실수에 의해 만들어졌다. 어찌하여 그런 무수한 실수들이 가능한 것일까. 왕위후이7단과의 준결승전 2국도 일반적인 승부 흐름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역전승이었다.

과거 1회 잉창치배 때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9단과의 8강전이나 결승전, 지난해 삼성화재배 결승전 때 창하오(常昊)9단과의 대국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조9단의 바둑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한판이었고 동시에 역전이 불가능한 바둑이었으나 조9단은 귀신 곡하게 이겨냈다. 조9단은 너무도 진한 투혼을 갖고 있어 귀신마저 감동시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 측은 올해의 삼성화재배 결승전이 결국 조훈현9단 대 왕레이8단으로 압축되자 이런 식의 분석을 내놓고 있다.

"왕레이와 창하오는 둘도 없는 친구다. 왕레이는 틀림없이 지난해 억울하게 진 창하오의 복수를 해줄 것"이라고 호기를 내보이고 있다. 창하오를 딛고 새롭게 중국랭킹 1위에 올라선 왕레이8단에게 높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왕레이가 얼마 전 일본에서 열렸던 도요타·덴소배 세계대회 8강전에서 조훈현9단을 꺾었다는 사실도 중국 측의 기대감을 부풀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조훈현9단은 준결승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결승에선 왕레이와 만나고 싶다"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빚을 놔두고 못 사는 조9단이 도요타·덴소배의 빚을 반드시 씻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결승전은 내년 1월 14~17일 열릴 예정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daro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