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전문가 김영호씨 혼례 음식 책 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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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결혼은 다 큰 남자와 여자가 가정을 이루는 신성한 일이야. 살다보면 어려운 일이 많겠지만 쉽게 가정이 허물어지는 험한 세상이 돼선 안돼. 우리 전통 혼례 음식을 통해 젊은 사람들에게 결혼의 의미를 되새겨 주고 싶었어."

한국요리 전문가인 김영호(金英鎬·78)씨가 『남기고 싶은 민속유산, 혼례·폐백·이바지』(영출판사刊)를 최근 펴냈다. 그는 국회의장 직무대행을 지낸 민관식(閔寬植·84)씨의 부인이다.

일반적인 조리법을 소개한 요리책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이 책에서는 첫 쪽부터 음식의 컬러 사진 한 컷과 간단한 설명만 나온다. 중간쯤 넘어가면 갑자기 흑백으로 바뀌면서 과거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폐백·이바지 과정을 거치는 혼례 음식을 정리하다보니 나 자신의 결혼 생활을 되돌아보게 돼 뒷 부분을 결혼 회고록으로 꾸몄다"고 말했다.

金씨는 개성 양반집 친정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물려받았다. 우리나라 음식분야에서 손꼽히는 실력자인 그는 서울 신촌 등지에서 20년이 넘게 한정식집을 운영해 왔다. 책에 컬러사진으로 소개된 폐백·이바지·신행 등 혼례에 쓰는 음식은 대부분 고려의 도읍지인 개성과 조선의 도읍지인 서울의 양반가 음식이다. 그는 개성의 예를 들어 혼례 음식이 오가는 절차를 쉽게 설명했다. 그러나 만드는 방법에 대한 내용은 없다.

"딸을 시집 보내거나 며느리 볼 때가 된 40대 말부터 50대에 걸친 주부들에겐 만드는 법을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어. 내용물만 알려주면 자신들의 방식대로 쉽게 만들 수 있을 거야."

'내가 걸어온 부창부수(夫唱婦隨) 60년'이란 제목의 회혼(回婚)회고록에는 그가 閔씨의 아내로 지낸 세월들이 담겨 있다. 그는 신식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발은 예뻐도 손은 험해야 한다''남편은 하늘같이 섬기고 자식에겐 모든 희생을 아끼지 말아라'고 한 부친의 가르침에 따라 그는 전통적인 부덕(婦德)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남편과 자식을 떠받드는 삶이 곧 여자 자신의 삶을 위한 일이라고 믿고 있다"며 "이런 마음가짐이 밑받침되면 어떤 고난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양가 부모가 자녀의 행복을 비는 마음으로 혼례음식을 손수 만들어 보내는 풍속을 되살렸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유지상 기자 yj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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