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대 진보문학의 話頭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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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오늘의 문학청년들은 말한다.우리의 고통과 절망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는 어찌되었든 거대담론을 펼칠 수 있었고 고통도 있었겠지만 실은 이를 한껏 즐길 수 있었다. '가난의 문학'이다. 오늘의 문청(文靑)이 아무리 누리고 싶어 해도 거대담론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너희들이 다 해먹었던 거다. 탈근대 시민사회란 곧 근대시민들이 누리던 모든 가치들의 풍요로움마저도 탈락시키게 하는 황무지의 세계가 아닌가 하는 물음은 절박한 것이다. 이에 대한 너의 긴급 답변은 무엇인가."

민족문학작가회의와 전국 12개 지회는 지난 9, 10일 이틀 간 전주전통문화센터에서 제11회 전국민족문학인 전주대회를 가졌다. 전국에서 골고루 참여한 2백여 문인들은 진보적 문학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가 걸어가야 할 자리를 합동토론회 등을 통해 모색했다. 1970~80년대 문학을 통해 민주화를 이끌어내려는 활동에 참여했던 소설가 박태순씨는 위와 같은 발제를 통해 근대시민사회의 가치가 허물어진 21세기 문학과 문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토론에 참여한 김정란 시인은 "민족과 민주라는 거대한 화두를 붙잡고 그토록 험한 시절을 건너왔던 작가들이 왜 지금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가"라고 질타했다. 오히려 지금은 시민들이 문인들보다 더 빨리 시대정신을 구현해내고 있다.이대로 가면 문학은 시대에 뒤처진 문화적 지진아가 될 것이니 각성한 시민들과 함께 시민운동을 펼쳐야할 것이라고 김씨는 주장했다.

박영희 시인은 "개인만의 자유도 중요하나 그 자유를 공유하기 위해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더욱 소중했던 것"이라 과거 문학운동을 평가하고 그 문학적 실천은 여전히 유효한 것임을 강조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박태순씨는 과거 투쟁 경험을 반추하며 "권력과 욕망과 광기는 독재세력들이 드러내놓고 있었던 것만이 아니라 이른바 '민주세력들'에게도 고스란히 내장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목도했다"고 괴롭게 토로했다. 안티, 반(反)운동 역시 권력지향적이고 이념집단에는 권력이 따를 수밖에 없으니 민족문학작가회의도 이념 지향적으로만 나아갈 게 아니라 친목쪽으로, 무엇보다 비운동·비이익 단체와 문학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전주에는 전통문화도시답게 판소리 등 소리가 넘쳐났다. 그런 좋은 공연도 뒤로 하고 문인들은 이시대문학 하기의 괴로움을 밤새도록 토로했다. 그리고 과거 투쟁경력으로 이미 명사가 됐거나 권력을 쥔 몇몇 문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 새끼'라는 욕설과 울분도 간간이 터져나왔다.

bacch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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