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末 공직기강 잡기 초강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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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가칭 전국공무원노조의 불법 연가(年暇)파업투쟁에 대해 5백91명 대량 징계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1989년 전교조 사태로 1천5백여명의 교육공무원이 징계를 받은 적은 있지만 일반 공무원의 무더기 징계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같은 결정은 정권 말기와 대선을 코앞에 두고 공직기강이 해이해진 데다 이를 방치할 경우 통치권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절박한 인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해당 공무원은 물론이고 공무원노조까지 거세게 반발하며 강경투쟁 의사를 밝히고 있어 파장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초강수 배경=지금까지 정부는 공무원들의 집단행동에 미온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공무원직장협의회에 이어 지난 3월엔 법외단체인 공무원노조까지 결성됐지만 '엄포'만 놨을 뿐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이번의 연가투쟁에서도 행정자치부 장관이 참가 공무원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까지 했으나 연가를 내고 파업에 동조한 공무원이 전국에서 2만여명이나 됐다. 울산 동구청장의 경우 연가 신청을 받지 말라는 행자부의 지침까지 어겨가며 연가 신청을 모두 받아주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같은 상황을 지켜보던 정부는 '정도'가 심각하다고 판단, 강경대처로 방향을 틀었다. 공무원노조의 연가투쟁이 순수한 노동운동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투쟁이라는 판단도 이같은 결정에 한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일부를 보장하는 '공무원조합법'을 만드는 등 노조활동의 기본 틀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무원노조 측이 순수한 노조단체가 아닌 정치세력화하고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갈등=공무원법상 공무원노조 소속 공무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방공무원에 대한 징계권은 자치단체장이 갖고 있다. 행자부장관은 징계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

박명재(朴明在) 행자부 기획관리실장은 "이번 조치는 중앙정부의 의지가 담긴 것"이라며 "지자체가 불응할 경우 교부세 등 재정적 불이익을 주는 수단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단체장이 '표'를 의식해 지역 여론 주도 세력의 하나인 공무원들에 대한 징계를 꺼리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징계규모도 소수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고대훈 기자

coch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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