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변경 방침에 성난 동심들 인터넷 항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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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요즘 청와대 홈페이지(http://www.cwd.go.kr)의 어린이마당 '나도 한마디' 코너에는 어린이들의 항의성 글로 거의 도배돼 있다. 어린이 네티즌들의 글이 하루 1백통 이상 접수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1일 정부가 주5일 근무제 종합대책의 하나로 어린이날을 공휴일에서 제외(달력상 빨강 표시를 않음)하고 날짜도 5월 첫째주 토요일로 옮기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뒤 나타난 현상이다.

'어린이날을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정말이지, 정부에 실망하고 어른들에게도 실망입니다'-.

이런 애원조는 그나마 어린이다운 애교가 묻어난다. 하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상당수 어린이들은 나름대로의 논리를 펴는 것은 물론 '테러리스트가 되겠다'는 등 섬뜩한 내용의 협박성 글도 서슴없이 표출하고 있다.

'어린이날을 없앨 생각 말고 정치나 잘하세요''어린이날을 없애는 것은 광복절과 삼일절을 옮기는 것과 같아요. 할아버지 생신을 없애는 것과 같으니까요''어린이날을 없애면 테러범이 될 거예요'-.

정부 관계자가 "어린이날 자체를 없애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공휴일에서 제외되긴 하지만 어린이들에겐 기념일이 토요일로 고정된다는 것밖에 달라질 게 없다. 주5일 근무가 정착되면 어린이나 부모가 함께 쉬면서 즐길 수 있지 않으냐"고 해명했지만 설득이 되지 않는 듯했다.

이에 대해 아동·청소년 연구기관인 인간발달복지연구소 김은영(金恩英·34) 연구원은 "자기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요즘 사회 분위기와 상통한다"고 분석했다.

상당수 사회단체들도 어린이들의 뜻만은 보듬어줘야 한다고 나섰다. 방정환 선생이 설립한 색동회는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어린이날 날짜 변경 및 공휴일 제외 반대'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서울 미동초등학교에서도 8일 같은 내용의 성토대회·서명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색동회 정혜순 간사는 "어린이날을 변경하는 것은 생일을 바꾸는 것과 같다"며 "어린이날 제정 당시의 정신이 훼손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대구=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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