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등 서명 의무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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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앞으로 상장·등록회사 경영진은 공시서류에 허위사항이 있다면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서명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또 결산 때만 제출하는 연결재무제표를 앞으로는 반기와 분기에도 제출해야 한다.

정부는 7일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대주주·최고 경영진과 이사회, 감사의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회계제도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공인회계사회·회계연구원이 참여한 '회계제도개선 실무기획단'이 마련한 이 방안을 토대로 공청회를 거쳐 내년 임시국회에 상정하고, 법 개정이 필요없는 내용은 내년부터 곧바로 시행할 예정이다.

◇달라지는 내용=회계보고서나 공시서류에 허위 사실이 있으면 책임진다는 최고경영자(CEO)와 재무책임자(CFO)의 서명이 의무화되고 대주주 등 사실상 업무를 지시한 사람도 민사상 책임을 지도록 증권거래법에 명시된다. 대주주의 불법 행위에 대해 민사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는 지금도 상법 등에 있지만 증권거래법에 포함될 경우 책임을 묻는 절차가 한결 간단해진다.

또 주주나 임원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담보를 제공할 때 이사회 승인을 거쳐야 하고,이자율과 대출 조건 등 관련 내용을 자세히 공시해야 한다. 2005년 말 없어지는 구조조정촉진법에 규정된 회계 부정 내부 고발자에 대한 보호조항은 증권거래법으로 옮겨 계속 적용된다.

공시제도도 국제 관행에 맞춰 연결재무제표 중심으로 바뀐다. 현재 결산 때 한 번만 작성하는 연결재무제표를 분기마다 작성, 공시해야 한다. 사업연도가 끝난 뒤 4개월 내에 제출해야 하는 연결재무제표 제출 시한도 1개월 앞당기는 방안이 추진된다.

또 재무제표 승인 권한을 주주총회에서 이사회로 옮겨 감사보고서 제출 시한을 앞당기는 방안도 법무부와 협의해 추진키로 했다. 공개기업의 경우 대손충당금과 재고자산 평가 등의 상세한 내역도 공개토록 하는 등 공시 범위도 확대할 방침이다.

양천식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은 "기업지배구조의 근간인 이사회·감사·최고 경영진·내부 회계조직·외부감사인·감독 당국이 각자의 기능을 책임 있게 수행하는 시스템을 설계하는데 역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시장의 반응=투자자들은 회계서류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을 환영했다. 지금까지는 규정은 있지만 빠져 나갈 길이 많아 불투명한 회계보고서를 근거로 투자 판단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은 "분식회계에 대해 실제 책임이 있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느냐가 회계 투명성 확보의 관건"이라며 "기업들의 부담은 커지겠지만 소액 투자자를 보호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회계감사 시장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S회계법인의 한 회계사는 "연결재무제표가 의무화되고 감사인 책임도 강화되기 때문에 기업 내부 인력이 대폭 강화돼야 하고 감사인과 기업 간 긴장관계도 한결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화여대 김일섭(경영학부)교수는 "회계감독을 강화하는 세계적 흐름에 동떨어지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본다"며 "그러나 지나치게 엄격한 제도로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도록 세부 사항에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향후 전망=공시 규정을 제외한 개혁안 대부분이 법률 개정사항이다. 정부는 최대한 기한을 단축해 내년 첫 임시국회에서 해당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기업들의 부담이 대폭 늘어나는 만큼 법안 심사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당장 한 회계법인이 동일 기업에 대해 컨설팅·감사 업무를 동시에 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도 회계법인 내부에 인적 방화벽을 치고 이해상충 소지가 있는 컨설팅 업무만 제한하는 쪽으로 완화됐다.

당초엔 회계감독을 위한 별도의 조직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됐으나 우선 증선위에 회계 관련 인력과 전문성을 확충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

최현철 기자

chd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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