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채널 정부'독점' OECD國중 한국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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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금은 민영화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성과 공정성이다. MBC나 KBS-2가 공공성과 공정성이 떨어진다면 모를까…. "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MBC와의 미디어 정책에 대한 인터뷰 중 'KBS-2와 MBC의 민영화'에 대해 묻자 답변힌 내용이다. 두 방송이 민영방송보다 공공성과 공정성이 떨어진다면 민영화할 수도 있다는 의견으로 볼 수 있다.

최근 KBS-2가 상업방송보다 더 선정성을 추구했다는 KBS의 자체 경영평가보고서가 발표됐고, MBC는 일부 정치권과 편파보도 시비에 휩싸여 있다. 두 공영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노무현 후보의 방송정책 관점에서 보면 이 방송국들에 대한 민영화 논의는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가수 매니저로부터 뇌물을 받아 배임수재 혐의를 받고도 MBC '여성시대'사회를 보던 김승현씨는 유죄선고를 받고서야 방송을 떠났다.

가요계 뇌물 비리 사건으로 KBS와 MBC 양사에 사법처리 대상자가 5명이 포함된 것으로 검찰이 발표했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회사에선 아무런 공식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자기 식구 감싸기에 빠져 공영방송으로서의 품격과 품위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따라서 이들을 민영화하자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고, 방송국 스스로 이같은 환경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 언론학계의 일반적인 지적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6월 지방자치선거 공약으로 KBS-2와 MBC의 민영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 대통령 선거 미디어 정책 공약 초안에서는 이를 슬그머니 뺐다고 한다.

분쟁의 소지가 있는 사안은 선거공약에서 제외한다는 방침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수권 야당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렇게 쉽게 공약을 뒤집으면 누가 믿고 표를 던지겠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국가 중에 한 국가가 사용 가능한 아날로그 지상파 채널 여섯 개 중 다섯개를 정권이 쥐고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동양방송을 강제로 빼앗는 등 1980년에 등장한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정책이 남긴 유산이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정권이 방송시장 진입을 통제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방송시장 역시 국경 없는 글로벌 경쟁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뉴라운드 협상에서는 미국뿐 아니라 브라질까지 한국에 대해 영화와 방송시장을 개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 방송계의 국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정책과 환경이 필요하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정권이 의한 방송을 통제하는 구조를 완전히 청산해야 한다. 또 국민의 기본권, 즉 다원적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권리를 충족할 수 있도록 국제 경쟁력을 갖춘 새로운 방송구조 패러다임을 논의할 때다.

한국 지상파 방송의 지형으로 볼 때 두 개의 공영방송과 네 개의 민영방송으로 이뤄지는 구조가 바람직하다는 것이 학계의 정론이다. 공영은 공영대로, 민영은 민영대로 자기들끼리 경쟁과 보완의 관계를, 또 공영과 민영이 상호 경쟁과 보완하는 공·민영 이원적 복합 경쟁체제가 한국 방송의 모델이라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효시인 영국을 비롯해 독일·일본·프랑스 등은 이같은 방송 체제를 갖추고 있다. 저질·폭력·편파·불공정 시비에서 벗어나 볼거리가 다양하고 교양과 품격이 있으며, 세계 경쟁력을 갖춘 방송문화 시스템을 만들 절호의 기회가 이번 대선이다.

김택환 미디어 전문기자

tw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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