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東西 넘나든 무대의상 마술 부린 듯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1면

모차르트의 오페라'마술피리'는 줄거리의 특성상 시대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만큼 자유로운 연출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남자 주인공 타미노가 동양에서 온 왕자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립오페라단의 '마술피리'(연출 백의현)는 이집트나 이슬람으로도 모자라 인도를 거쳐 극동까지 공간적 상상력을 넓히고 있다. 시간적으로는 고대와 현대가 혼재된 모습이다. 밤의 여왕이나 파미나의 의상은 과감한 모더니즘을 보여주면서도 타미노·모노스타토스의 복장은 고구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다. 이처럼 이색적인 무대의상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거창하게 말해 모더니즘과 오리엔탈리즘의 결합은 무대의상에서 그치지 않고 격자무늬로 수놓은 사각형의 무대 세트로도 연결되고 있다. 세부 묘사나 군더더기를 덜어낸 무대 장치는 처음엔 허전해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시공간을 초월한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수많은 사각형 사이로 나있는 문들은 꿈과 현실, 성(聖)과 속(俗), 밝음과 어둠, 정치와 에로스를 자유롭게 넘나들게 하는'마술피리'의 세계다.

'마술피리'는 결국 동화 같은 에피소드들이 우주적 메시지로 승화되는 과정이다. 다양한 장면이 겹쳐 나오기 때문에, 이 작품처럼 빠른 장면 전환이 요구되는 오페라는 드물 것이다. 무대의 높이를 십분 활용한 무대 장치와 연출 덕분에 지루함 없이 박진감 넘치는 무대를 꾸몄다.

바리톤 전기홍은 쾌활하고도 익살맞은 파파게노 역을 무리없이 잘 소화해냈으며 탄탄한 발성과 연기를 보여준 테너 이영화, 실감나는 연기로 폭소를 자아낸 바리톤 이연(모노스타토스 역)도 눈길을 끌었다. 밤의 여왕(소프라노 박미자·김수진)의 아리아 외에 여성 3중창을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모차르트 음악의 위대함을 새삼 일깨워준 부천시향(지휘 임헌정)의 활약 또한 빼놓을 수 없다. 9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02-586-5282.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