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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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는 경영위기에 직면했다.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 우선 자동차부문에서 5천1백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

지난주 이탈리아 최대의 자동차그룹 피아트사의 공식발표다. 이미 예고된 발표였지만, 노조는 밀라노·토리노·시칠리아 등의 공장 인근 도로를 봉쇄하고 시위를 벌였다. '이탈리아의 자존심' 피아트의 몰락이 국민들에게 준 충격도 컸다.

피아트는 189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조반니 아리(1866∼1945)에 의해 창립됐다. 피아트(FIAT)는 '이탈리아 토리노의 자동차공장(Fabbrica Italiana Automobili Torino)'이라는 단어의 첫글자들로 만들었다. 20세기 들어 두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군수품 생산과 전후 복구사업으로 돈을 벌었다. 특히 일본을 훨씬 앞서 1936년에 내놓은 초소형차로 유럽시장을 휩쓸면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재벌로 성장했다. 이탈리아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5%가 피아트의 몫일 정도.

피아트의 패인은 두 갈래로 분석된다. 하나는 과잉보호에서 비롯된 경쟁력 상실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70년대 이후 일본차의 진출을 막기 위해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시장보호 정책을 유지해왔다. 아리가(家)와 권력 간의 정경유착이 정부정책에 반영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시장개방이 불가피해지면서 70%에 달하던 국내시장 점유율은 30%대로 떨어졌다. 97년 이후 매년 적자가 쌓이면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65억달러(약 8조원)에 이르고 있다.

후계체제의 문제도 또 다른 패인이다. 창업주의 2세이며 현 지아니(82)회장의 아버지인 에두아르도는 43세에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지아니 회장의 아들은 정신질환을 앓다가 2년 전에 자살했고, 조카 마저 5년 전에 암으로 죽었다. 36년 이상 지아니 회장체제가 이어지는 동안 조직도 함께 노쇠화하면서 회생의 기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지금 피아트의 장래는 2년 전 지분 20%를 인수한 미국 제너럴 모터스(GM)에 맡겨져 있다. 지아니 회장은 GM에 지분을 팔면서 피아트의 간판도 지키고 재산과 체면도 유지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GM은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 않은 채 피아트의 주가 하락을 지켜보고 있다.

감원과 노조의 파업, GM에 맡겨진 운명 등 피아트의 오늘은 여러 면에서 외환위기 이후 대우자동차의 행로와 유사하다. 대우차의 결말은 우리가 지켜본 대로다. 피아트가 과연 제2의 대우차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손병수 Forbes Korea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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