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후보, 정체성과 비전 내놓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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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몽준 의원이 국민통합21 후보로 대선 무대에 공식 데뷔했다. 그로선 1992년 대선 때의 국민당에 이어 10년 만에 무소속 생활을 마감하면서 새 정당의 둥지를 튼 것이다. 후보 수락 연설에서 그는 '정치 개혁, 무능·부패정치 종막'를 창당 의의로 내세웠고 "새로운 역사관과 정치관을 가진 젊은 지도가 나서야 한다"고 승리를 다짐했다. 국민통합21의 출범은 그의 본격적 대선 행보를 의미하면서도 여러 과제를 던지고 있다. '왜 정몽준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가, 국민통합21의 노선은 무엇인가'라는 정체(正體)성과 비전을 명쾌하게 내놓아야 하는 숙제를 안은 것이다.

그동안 鄭후보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바로 정체성의 모호함과 비전의 짜임새 부족이었다. 자신의 독특한 컬러, 국가 경영의 청사진을 제대로 내놓지 않은 채 '반창(反昌)·반노(反盧)'의 틈새를 넓히는 전략에 골몰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 문제도 확실한 원칙과 방법을 제시하지 않고 여전히 엉거주춤하다. 때문에 여론조사 지지율만 따지고 월드컵 잔영(殘影)을 붙잡으려는 '실체 없는 이미지 정치'에 의존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그의 인기 하락과 함께 대선구도가 '1강(이회창) 2중(鄭, 盧)'으로 바뀐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鄭후보는 "한나라당 후보는 5년 전에 실패한 정치인, 민주당은 국민 통합에 실패했다"고 자신의 비교 우위를 주장했다. 그런 점을 경쟁력으로 삼아 '반창·반노'의 수요층을 결집시키려면 정체성 문제에 대한 치열한 고뇌가 절실하다. 그것이 그가 주장하듯'국민통합21이 대선만을 위해 태어난 정당이 아니기'위한 기본 조건이다. 현대전자 주가조작, 정경유착 시비, 아랫사람에 대한 거친 대접 등 그와 관련한 쟁점들에 대해 구체적인 해명과 이해를 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창당대회를 수놓은 화려한 수사(修辭)와 깃발 앞에는 여론 검증의 험난한 터널이 놓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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