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업계 "연말이 무섭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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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최근 발생한 알에프로직 사기사건으로 코스닥 벤처업체들의 자금사정이 크게 악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서울 명동 사채시장에서 '벤처기업 연말 자금 대란설'까지 나오고 있다.

벤처기업의 자금 악화설은 벤처기업들이 영업활동을 통해 이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롯되고 있다. 여기에 벤처기업이 코스닥시장 공모나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이 동나기 시작하는 데다 코스닥시장의 침체로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도 힘든 형편이기 때문이다.

또 최근 대주주가 물품대금을 빼돌린 알에프로직 사건으로 일부 정보기술(IT)업체들은 현금이 아니면 물품을 판매하지 않고 있다. 가뜩이나 업황이 어려운 상황에서 업계 내의 상호 불신까지 두드러지는 형국이다.

코스닥 투자자들은 무엇보다도 재무상태를 꼼꼼히 따져본 뒤 투자종목을 선별해야 할 때인 것이다.

◇자금난 원인은=코스닥 벤처기업들은 거래소 상장업체는 물론 코스닥의 전통산업 업체에 비해서도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는 편이다.

코스닥 벤처기업 3백51개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3% 가량 줄었다. 이중 40%인 1백41개사는 적자를 냈다. 코스닥 벤처기업들의 영업이익률(매출액에서 영업이익이 차지하는 비율)은 3.4%로 코스닥 일반업체(7.9%)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코스닥시장의 침체는 벤처기업의 자금난을 가중시켰다.

올 들어 10월까지 코스닥업체들이 증시에서 조달한 자금(유상증자+공모)은 1조5천7백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조8천5백억원)보다 2천8백억원(15%) 가량 줄었다. 99년(7조7천8백억원)과 2000년(5조1천7백억원)과는 비교도 안된다.

<그래프 참조>

◇자금난 어느 정도인가=새롬기술은 코스닥 벤처기업들의 명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2000년 3월까지 이 회사가 주식투자자로부터 끌어모은 자금은 3천7백억원. 그러나 올 6월 말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1천6백88억원. 2년3개월 동안 절반이 넘는 2천억원의 돈을 써버린 것이다.

그래도 새롬기술은 자금사정이 좋은 편이다. 코스닥 벤처기업 중 6월 말 현재 현금 보유액이 1억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업체가 5개사였다. S사의 6월 말 현금 보유액은 3천7백만원, R사는 5천3백만원에 불과했다.

◇부도 가능성을 잘 판단해야=최근 소프트윈 등 적잖은 코스닥 기업들이 '흑자 부도'를 낸 점을 고려하면 겉만 멀쩡하고 속은 곪아터진 기업들이 적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형 우량주 위주로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코스닥 종목에 투자할 경우 부도 가능성이 큰 기업을 미리 선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신증권 나민호 투자분석팀장은 "대부분의 코스닥 종목이 증권사 분석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데다 단순히 재무제표만 보고 부도 가능성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부도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의 매출 내용이 얼마나 건전한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매출은 늘고 있지만 외상매출이 대부분이라면 머지않아 부도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또 전체 차입금에서 1년 내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의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는 기업들도 조심해야 한다.

이와 함께 문어발식으로 다른 기업에 투자하거나, 대주주가 빈번하게 바뀌는 기업들도 경계 대상이다. 올해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된 17개사 중 10개사는 대주주가 최근 1년 안에 바뀌었다.

이희성·하재식 기자

bud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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