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4>김종필·이인제 부활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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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종필(金鍾泌·JP)자민련 총재와 민주당 이인제(李仁濟)의원이 지난 3일 회동에서 중부권 신당 창당에 전격 합의한 것은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두 사람이 생존을 위해 꺼내든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충청권이 기반인 두 사람은 최근 수차례의 골프 회동과 물밑 접촉 등을 통해 정치적 활로를 공동 모색해 왔다.

이완구(李完九)의원의 한나라당행 이후 JP는 친(親)한나라당, 친 정몽준(鄭夢準)으로 찢긴 소속 의원들의 동요 속에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처지였다. 직접 움직이기에는 한나라당이나 鄭의원 측 모두 반응이 신통치 않다.

지난 4월 민주당 후보경선 패배 후 정치적 동면상태에 들어간 李의원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충청권을 사수해야 하는 JP와 충청도란 지역기반을 외면할 수 없는 李의원의 이해가 일단 맞아떨어진 것이다. 李의원의 핵심 측근은 "신당 창당은 눈앞의 대선보다는 2년 뒤 총선을 염두에 둔 두 사람의 정치적 승부수"라고 말했다.

◇창당 프로그램과 대선 구상=이들의 구상은 다음 주중 李의원이 민주당 탈당과 동시에 신당 창당을 선언하면서 구체화할 전망이다. 자민련 소속 의원들과 이한동(李漢東)전 총리, 민주당을 탈당한 후단협 세력을 한데 묶는다는 것이다. 지역적으론 경기 남부와 충청이 중심이 되고, 이념적으론 '중도개혁'을 내걸었다.

이 과정에서 예상되는 자민련 의원들의 일부 이탈은 감수하겠다는 게 JP의 각오라고 한다. 李전총리도 합류에 부정적이지 않다. 따라서 후단협 의원들의 합류 여부가 신당의 규모와 성패를 결정할 주요 변수다.

따라서 이들의 구상은 정몽준-노무현 후보 간 단일화 논의의 성사 여부와 맞물려 있다. 두 후보의 단일화가 실패할 경우 오갈 데 없는 후단협 소속의원 대부분을 끌어안겠다는 게 이들의 구상이다. 실제로 민주당을 이미 탈당했거나 탈당이 예상되는 의원들 중엔 李의원과 가까운 경기·충청권 의원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대선과정에서의 활동방향은 JP와 李의원 두 사람 사이에도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다고 한다. 李의원은 후보를 내지 않고 일정 시점에서 이회창 후보나 정몽준 후보 중 한 명을 지지하자는 입장인 반면 JP는 일단 신당을 만든 뒤 기존 정당과 합당하거나 독자 후보를 내는 쪽을 선호한다고 한다.

◇지역당 논란과 한계=지역당 논란은 두 사람이 극복해야 할 숙제다. 李의원 측은 '충청도 당'이란 비난을 피하기 위해 호남지역 의원들의 참여를 집중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선 불복의 멍에를 안고 있는 李의원으로선 신당 창당의 명분을 얼마나 다듬느냐도 난제다. 유력한 대선후보를 배출할 가능성이 작다는 것도 신당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한다. 후보도 내지 않고 2년 뒤 총선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중부권 신당 구상은 ▶盧-鄭간 후보 단일화 협상이 무산되고▶후단협 소속 의원들이 합류하고▶자민련 의원들의 이탈이 최소화되는 등 아주 엄격한 조건이 전제돼야 순항할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서승욱 기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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