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총장 누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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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름다운 퇴장, 화려한 복귀, 그리고 씁쓸한 퇴장'.

지난해 5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준다며 퇴임했다가 7개월여 만인 올해 1월 검찰 총수로 화려하게 복귀했던 이명재(李明載·59·사시 11회)검찰총장이 4일 씁쓸하게 퇴장했다. 특히 강압적 방법이 아닌 합리적 추궁과 설득으로 자백을 받아내 당대 최고 검사 중 하나로 꼽혔던 그가 후배 검사들의 가혹 수사로 옷을 벗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검찰 내 신망이 두터운 지사(志士)형의 李총장답게 물러날 때를 알고 용퇴했다는 평가는 받고 있다. 서울지검 특별조사실에서 조사를 받던 趙모씨가 강력부 수사관들의 구타로 사망했다는 의혹이 지난 2일 국과수 부검 결과를 통해 사실로 확인되기 전까지 李총장은 '그래도 설마…'하며 가슴을 졸였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그러나 검찰 초유의 구타 사망 사건으로 결론나면서 사퇴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는 후문이다.

李총장이 지난해 5월 말 서울고검장을 끝으로 27년간 봉직했던 검찰을 떠날 때만 해도 선후배 검사들이 모두 아쉬워하며 말렸다. 사시 선배(9회)인 신승남 대검 차장이 총장이 됐기 때문에 굳이 물러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검찰의 원로가 되면 '아름다운 퇴장'을 하기로 다짐해왔고 이제 그 다짐을 실천한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변호사로 활동하던 그는 신승남 총장이 동생 구속 건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서 위기에 빠진 검찰조직을 구할 적임자로 기용됐다.

이후 李총장 체제의 검찰은 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을 구속하는 등 강단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안정을 찾았다. 당시 그가 대검 집무실과 자택을 오가며 은둔생활에 비유될 정도로 외부와의 접촉을 삼갔던 것은 여러 번 화제가 됐다. 李총장은 지난 7월 愼총장과 김대웅 전 광주고검장을 수사기밀 유출 혐의로 기소하면서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반려됐었다.

조강수 기자

pinejo@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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