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시각장애인 뉴욕마라톤 5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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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재미있었다(fun)"고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눈물을 씻어냈다.

시각장애인 말라 러년(33·미국·사진)이 마라톤 풀코스 첫 도전인 뉴욕 마라톤대회 여자부에서 2시간27분10초의 뛰어난 기록으로 5위에 올랐다.

<관계기사 s3면>

그의 기록은 우승자인 조이스 체춤바(케냐)에게 1분14초 뒤진 것으로, 미국 내 역대 10위이자 1996년 이후 최고 기록이다. 지난해 이 대회 우승자 마가레트 오카요(케냐) 등 수많은 엘리트 선수들이 그보다 늦게 결승선을 끊었다.

장애인을 배려하는 훈훈한 마음이 그와 함께 달렸다. 트랙 경기에선 이미 뛰어난 기량을 발휘한 바 있는 러년이지만 울퉁불퉁한 도로 위에서 숱하게 코너를 돌아야 하는 마라톤은 혼자 힘으론 벅찬 일이다. 러년은 2∼3m 앞의 물체만 희미하게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번 대회 출전을 앞두고 시험삼아 참가한 지난 10월 필라델피아 하프마라톤에서는 경찰 오토바이와 충돌할 뻔하기도 하고 결승선을 찾지 못해 한동안 헤매기도 했었다.

대회 조직위는 러년의 레이스를 돕기 위해 자전거를 탄 도우미로 하여금 그녀를 따라가며 "곧 코너가 나옵니다" "왼쪽에 물통이 있습니다" 등을 일일이 알려주도록 했다. 또한 여자부를 남자부보다 30분 먼저 출발하도록 해 러년이 뒤로 처지는 다른 선수들과 부딪치는 것을 사전에 방지했다.

완주 후에도 전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은 러년은 "너무 재미있었다. 38㎞ 지점까지는 정말로 달리기를 즐겼다. 길거리에 나온 수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으며 거리를 달리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멋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아홉살 때 이른바 퇴행성 망막장애로 불리는 '슈타가르트병'을 앓아 시력을 상실한 러년은 92년 바르셀로나 장애인올림픽에서 4관왕(1백m·2백m·4백m·멀리뛰기)을 차지한 뒤 일반인의 무대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1천5백m에서는 결선까지 진출했고 지난해 5천m 미국 실내 최고기록을 깼다.

시각장애인 교육 석사학위를 갖고 있는 러년은 장애 어린이들에게 "의지만 있다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치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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