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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183> 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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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과유불급(過猶不及)’. 요즘 쌀이 그렇다. 너무 많이 남아돌아서 두통거리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올 10월 말 쌀 재고량이 140만t에 육박한다. 국내 쌀 소비량을 고려한 적정 재고량 72만t의 두 배에 가깝다. 최근 2년 연속 풍년이 든 데다, 의무 수입해야 하는 쌀까지 있 다. 막걸리 붐이 일고 있지만 그 정도로는 역부족이다. 올해는 “풍년이 들까봐 걱정”이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도대체 쌀이 뭐기에. 쌀의 역사에서부터 유통과 가격결정 구조, 그리고 우리는 왜 쌀을 의무 수입하고 있는지 등을 알아본다.

권혁주 경제부 기자

30년 전엔 모자라서 걱정 … 혼식, 7분도 먹기 운동

세계에서 처음으로 쌀을 재배하기 시작한 곳은 어디일까. 설이 분분했다. 인도라는 주장도 있었고, 동남아시아라는 학자도 있었다. 중국에서 약 1만1000년 전의 재배 벼가 발견되자 ‘중국이 쌀 재배의 발상지’라는 학설이 힘을 받게 됐다. 그러다 상황이 바뀌었다. 한국에 의해서다. 1998년 충북 청원군 소로리의 구석기 시대 유적지에서 59톨의 볍씨가 발견됐다. 탄소동위원소 기법으로 연대를 측정한 결과 1만3000~1만7000년 전의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중국보다 2000년 이상 앞선 것이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쌀. 30년 전만 해도 ‘7분도 먹기’ ‘혼식’ 운동을 벌일 정도로 귀하신 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잇따른 풍작과 의무 수입으로 너무 남아돌아 걱정이다. [중앙포토]

야생 벼가 아니라 재배 벼라는 사실도 입증됐다. 낟알이 줄기에서 떨어진 부분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해 이를 밝혀냈다. 낟알이 쉽게 떨어지는 야생 벼와는 달리, 잘 떨어지지 않는 재배 벼의 흔적이 뚜렷했다. 과학적 증거에 국제 학회도 소로리 볍씨가 지금껏 발견된 가장 오래된 벼농사의 흔적이라는 점을 공인했다. 벼농사가 한국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해도 당분간은 국제 학계에서 강한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한반도에서 밥이 언제부터 다른 곡식들을 제치고 주식으로 자리 잡았는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남해왕 13년(서기 16년)에 멸구의 피해로 백성이 굶주려 창고를 열어 구했다’는 기록을 통해 이미 이 시기에 밥이 주식이 됐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멸구는 벼만 공격하는 해충이어서, ‘멸구의 피해로 백성이 굶주렸다’는 것은 ‘쌀 수확이 부족해 식량난이 닥쳤다’는 뜻이 된다.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듯, 쌀은 영양덩어리이기도 하다. 탄수화물이 대부분이지만 단백질도 상당하다. 특히 우리 몸에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이 많다. 단백질덩어리인 달걀의 g당 필수 아미노산 함량을 100이라고 했을 때, 쌀에는 65만큼이 들어 있다. 밀은 41로 쌀보다 필수 아미노산 함량이 떨어진다.

지금은 남아돌아서 난리지만,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은 쌀이 모자라 아우성이었다. 쌀을 수입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온갖 운동이 벌어졌다. 40대 이상이라면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시절 보리 같은 잡곡을 섞어 밥을 지었는지, 교사들이 일일이 학생들의 도시락을 조사하던 ‘혼식 검사’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 권장 혼식률이 30%였다. 적어도 잡곡을 30% 섞으란 얘기다. 매주 수요일은 또 ‘분식의 날’이라고 해서 빵이나 국수 같은 것을 먹도록 장려했다.

‘7분도 쌀 먹기’ 운동도 있었다. ‘7분도’니 ‘9분도’니 하는 것은 벼 껍질을 벗기면서 속살을 얼마나 깎아냈나 하는 것이다. 숫자가 클수록 많이 깎았다는 뜻이다. 7분도면 현미에 해당한다. 조금이라도 덜 깎은 쌀을 먹어 쌀 소비를 줄여보자는 게 ‘7분도 쌀 먹기’의 속내다. 요즘은 건강을 위해 일부러 현미를 먹지만, 당시엔 쌀을 아끼려고 현미를 먹도록 했던 것이다.

쌀을 자급하게 된 건 1970년대 후반 들어서였다. 요즘 쌀에 비해 밥맛은 좀 떨어지지만, 생산량이 많은 ‘통일벼’가 효자 노릇을 했다. 통일벼 덕에 70년대 초반 연간 400만t 정도였던 쌀 생산량은 70년대 후반 600만t까지 늘었다.

브랜드화·고급화 … 즉석 도정 나선 즉석밥 업체도

최근의 생산량은 450만t에서 500만t 사이다. 그런데도 쌀이 남아돌아 아우성이다. 제일 큰 이유는 식생활 패턴이 바뀐 것이다. 먹을거리가 풍부해지면서 1인당 쌀 소비량이 확 줄었다. 한식 말고 다른 음식을 많이 먹어서 그런 것만이 아니다. 반찬이 풍성해 매 끼니 먹는 밥의 양이 줄었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1인당 연간 130㎏에 이르던 쌀 소비량이 지난해에는 74㎏으로 쪼그라들었다. 쌀이 남아돌 수밖에 없다. 세계무역기구(WTO)와의 합의에 따른 의무 쌀 수입량이 매년 늘고 있고, 매년 40만t씩 해 오던 대북 쌀 지원이 현 정부 들어 끊긴 것도 쌀 재고가 늘어난 요인이다.

자급량 이상으로 쌀이 생산되면서 쌀 재배의 방향이 바뀌었다. ‘수확량’이 아니라 ‘밥맛’과 ‘건강’을 겨냥한 품종과 재배법이 개발됐다. 브랜드화·고급화도 진행됐다. 현재 국내 쌀 브랜드가 200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질소 비료도 덜 쓰게 됐다. 질소 비료를 많이 쓰면 쌀에 단백질 함량이 지나치게 높아져 밥맛이 떨어진다는 이유다. 육류나 달걀 등 단백질 식품을 많이 먹지 못했던 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했을 재배 방법이다.

판매 방법도 달라졌다. 그 자리에서 벼를 찧어 주는 ‘즉석 도정 서비스’ 같은 것이다. 도정을 해 놓은 뒤 시간이 흐르면 쌀알에서 수분이 날아가 맛이 떨어진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해 포장 쌀 판매량은 전년보다 8.3% 줄었으나 즉석 도정 쌀 판매는 오히려 9.9% 늘었다. 올 들어 5월까지는 더 많이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6% 증가했다.

즉석 도정 대열에는 즉석밥 업체도 참여했다. ‘햇반’을 만드는 CJ제일제당은 자체 도정 공장을 차려놓고 있다. 도정하자마자 즉석 밥을 만들어 조금이라도 밥맛을 더 좋게 하려는 노력이다. 자체 도정 공장을 가진 즉석밥 업체는 현재 CJ제일제당이 유일하다.

즉석밥은 CJ제일제당이 1996년 처음 내놨다. 이어 2002년 농심이 ‘따끈따끈한 햅쌀밥’, 2004년 오뚜기가 ‘오뚜기밥’, 2006년 동원F&B가 ‘센쿡’을 출시했다. 이마트도 자체 브랜드 상품인 ‘왕후의 밥’을 판매하고 있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지난해 즉석밥용으로 쓰인 쌀은 1만2000t으로, 연간 주식용 쌀 총소비량인 375만5000t의 0.3%를 차지했다. 시장 점유율 1위는 햇반(67.2%)이다.

수매가 왜곡으로 쌀값 폭락 불러

현재 농가에서 생산하는 쌀의 약 30%는 자가 소비용인 것으로 농림수산식품부는 파악하고 있다. 직접 먹거나 도시에 사는 가족·친척 등에게 주는 것이다. 자가소비용 말고 순수 판매용 중에서 55% 정도는 지역 농협이, 40%가량은 민간 미곡종합처리업체(RPC)들이 사들인다. 이 쌀들은 대형마트로 직접 가거나, 도·소매상을 거쳐 소비자들의 식탁에 오른다. 농협이나 RPC의 손을 거치지 않는 나머지 5%는 인터넷 등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직판을 하거나, 정부가 수매하는 부분이다.

최근까지도 농협이 사들이는 가격에 좀 문제가 있었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논리가 아니라, 묘한 정치 논리가 작용했다. 2008년 수확기에 이런 현상이 심하게 일어났다. 당시는 ‘대풍’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풍년이 들었던 해. 정상적이라면 쌀값이 떨어져야 했다. 그런데 상당수 지역 농협이 비싼 값에 쌀을 사들였다. 곧 다가올 지역 농협 조합장 선거를 의식한 당시 조합장들이 수매가를 올려버린 것이다. 이건 결국 농협 경영에 부담이 됐다. 비싸게 사놓긴 했는데, ‘시장 논리’가 좌우하는 소매가는 그만큼 오르지 않아 적자 요인이 생기게 됐다.

2008년의 농협 수매가 인상은 2009년 쌀값 폭락 대란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대풍이 든 2009년에는 지역 농협들이 비싼 값에 쌀을 사들이려 하지 않았다. 쌀값은 뚝 떨어졌다. 풍년이었던 지난해의 영향으로 재고가 잔뜩 쌓여 있는데, 더 많은 쌀이 수확돼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한 해 전 농협이 쌀을 비싸게 사들였기 때문에, 농업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쌀값 하락 폭은 더 컸다.

현재 정부는 쌀값이 떨어질 경우 농업인들에게 이를 보전해 주고 있다. ‘쌀 소득 등 보전 직접 직불제’를 통해서다. 쌀 80㎏당 17만83원을 목표가로 하고, 값이 이보다 떨어지면 차액의 85%를 ‘변동직불금’으로 준다. 또 농사 면적에 따라 나눠주는 ‘고정직불금’도 있다.

정부 품질 경쟁력 자신감, 쌀시장 전면 개방 검토

앞서 ‘쌀이 남아도는 원인 중 하나가 의무 수입’이라고 했다. 이건 2004년 세계무역기구(WTO)와의 쌀 개방 협상에서 비롯됐다. 당시 주요 쌀 수출국들은 한국에 대고 당장 쌀 시장을 개방하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맞섰다. 가격 차이 때문이었다. 미국산이 워낙 쌌다. 바다 건너 오는 운송 비용을 합쳐도 국내산 쌀이 가격 경쟁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빗장을 풀었다가는 국내 쌀 농가의 피해가 엄청날 것으로 예상했다.

줄다리기 끝에 쌀 시장을 개방하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일정량을 의무 수입하기로 했다. 2004년 20만5000t을 시작으로, 매년 2만t 남짓씩을 늘려 2014년에는 40만9000t을 들여오기로 했다. 보다 정확히 하면 ‘이만큼을 수입한다’가 아니라 ‘최소한 이만큼은 수입한다’다. 여기엔 관세를 5%만 붙인다.

올해 수입량은 32만7000t.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이만큼이 더 들어오는 것은 꽤 큰 부담이다. 게다가 앞으로 수입량은 더 늘어난다. 그래서 2년 전부터 정부는 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쌀 시장을 개방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개방에도 조건은 붙는다. 개방 전 해의 의무 수입량만큼은 2014년까지 계속 들여와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년부터 개방하기로 결정을 하면, 최소한 2010년 의무량인 32만7000t은 들여와야 한다. 그래도 이게 가만히 앉아 매년 2만t씩 늘려 수입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뒤집어 보면 ‘쌀 시장을 개방해도 소비자들이 외국산 쌀을 별로 사 먹지 않을 것’이라고 정부가 생각한다는 얘기다. 일본과 대만을 봐도 그렇다. 일본과 대만은 일찌감치 쌀 시장을 열어젖히면서 수백%에 이르는 관세를 붙였다. 개방하고 10여 년이 지났지만, 일본과 대만에서 수입 쌀은 아직 기를 못 펴고 있다.

쌀 시장 조기 개방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농업인들도 상당수다. 그러나 ‘만에 하나 쌀 농업 기반이 무너지면 어쩔 것인가’라는 반대 또한 만만치 않아 조기 개방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쌀 조기 개방에 대한 논란이 수년째 이어지는 동안, ‘개방 전 해 의무 수입량 유지’라는 조건 때문에 조기 개방의 효과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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