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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아파트'빨리 온 혹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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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서울지역의 대표적인 재건축 추진 단지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대한 재건축 불가 판정으로 서울 강남권 재건축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이번 판정은 정부의 재건축 억제 방침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재건축 추진 아파트들에선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현행 주택건설촉진법에 명시된 재건축 기준(20년)을 넘긴 은마가 안전진단을 받지 못하게 돼 안전진단을 신청했거나 신청을 준비 중인 아파트들은 사업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은마 재건축추진위원회는 30일 "헌법소원과 함께 행정소송 등을 제기하는 방안 등 법적 대응방향을 다각도로 모색하기 위해 조만간 임원회의를 여는 한편 이르면 이달 중 안전진단 재심의신청서를 제출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강남구 권기범(權奇範)도시관리국장은 "주민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현행 규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내려진 결정이므로 법적인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다시 심의 신청을 하면 일정상 두달 정도 후 다시 심의를 하게 되겠지만 다른 결과가 나올 확률은 거의 없다"고 못박아 은마 재건축 불가 판정 파장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불투명한 재건축 앞날=은마아파트 주민 金모(54)씨는 "재건축 규제가 심해지고 있어도 지은 지 20년이 넘었기 때문에 당연히 안전진단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어처구니없다"고 말했다.

이달 초 개포동 시영에 이어 은마도 안전진단 대상에서 제외돼 재건축 추진 아파트들이 계속해 사업 초기에 발목을 잡히자 강남지역 재건축 추진아파트 대부분에 비상이 걸렸다.

개포동 시영은 지은 지 18년이어서 충격이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지은 지 23년이나 된 은마의 충격파는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장 다음달 안전진단 심의를 앞둔 일원동 대우와 개포동 주공2·4단지는 은마의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들 아파트는 모두 지은 지 20년 이하다. 대우 재건축추진위 관계자는 "구조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배관 등이 낡아 생활하는 데 불편이 커 재건축을 하려고 하는데 더 오래된 은마가 탈락해 남의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다음달 말이나 12월 초에 정밀안전진단 결과가 나올 예정인 개포동 주공1단지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개포동 주공3단지 인근 양지부동산 송대호 사장은 "3단지는 시영의 안전진단 결과를 보고 통과가 어려울 것 같아 신청을 철회했는데 당분간은 안전진단 신청도 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서초구 잠원·반포동, 강동구 둔촌·고덕동 등의 재건축 추진 아파트들도 은마와 같은 신세가 되지 않을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안전진단을 신청한 강동구 고덕동 주공3단지의 심사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현재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고 안전진단 결과 보고서를 검토 중인 고덕동 주공1·시영 아파트의 검토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안전진단을 통과하고 조합설립인가를 준비 중인 아파트들도 마음이 편치 않다. 대치동 한 아파트 재건축추진위 관계자는 "조합설립에 필요한 주민 동의서를 대부분 확보해 조만간 인가 신청을 할 계획인데 재건축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인가가 늦어지지 않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가격 하락세 가속화할 듯=재건축 추진 아파트들의 매물이 늘어나고 가격은 더욱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강남구 대치동 부동산마트 강봉대 사장은 "은마아파트 매물이 50건 가량 쌓여 있는데 더욱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다른 지역 아파트 값도 내리막길을 걸을 것으로 전망된다. 강동구 둔촌동 SK공인중개사무소 박노장 사장은 "은마아파트와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면 안전진단 통과는커녕 신청조차 불가능할 것"이라며 "둔촌 주공의 경우 한달 새 3천만∼4천만원 정도 값이 빠져 비쌀 때 샀던 사람들은 밤잠을 설칠 정도"라고 말했다.

RE멤버스 고종완 대표는 "아파트 가격 상승의 진원지였던 강남 재건축 추진 아파트에 또다시 직격탄이 떨어져 가격 하락 심리가 더욱 확산돼 아파트 가격 전반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안장원·서미숙·김필규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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