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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포럼

한류도 이젠 '소프트 + 하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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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겨울 연가'의 무대였던 춘천시 '준상이네 집'은 요즈음 5000원씩 입장료를 받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일본인 관람객이 줄을 잇고, 그 덕에 지난해 춘천시를 찾은 총 관광객이 500만명을 넘었다.

하지만 이런 열풍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의문이라는 사람이 적잖다. 준상이네 집이 규모 면에서 볼거리가 적은 데다 춘천이 국제 관광지로 크기엔 아직 각종 시설이 부족해서다. 요즈음 우리 방송과 영화가 외국인들까지 반하는 이야기와 인물들을 만드는 데 나름대로 성공하고 있으나 그 배경을 이루는 도시와 건축물에는 미흡한 구석이 많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름다운 건물에 찬탄하고 쾌적한 거리와 도시를 즐기고 싶어한다. 거기에 낭만적인 이야기까지 곁들여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삶의 여유가 있다면 그런 경험을 위해 외국에 나가 돈을 쓰기도 한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스페인 광장을 보고자 일곱 언덕의 도시 로마로 날아가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멕 라이언이 톰 행크스 부자를 대면한 곳이라는 기억을 되살리며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 오른다.

1931년 건설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자리를 내놓은 지 오래다. 그럼에도 전망대에 올라가려면 관광철엔 한 시간 30분 정도 줄을 서기 일쑤다. 어른 한 사람 입장료가 1만6000원 정도로 결코 싸지 않지만 연간 350만명이나 다녀간다.

이는 예전에 최고층이었다는 한낱 '추억 효과'에만 기댄 돈벌이가 아니다. 20세기 초 아르 데코 양식의 독특한 멋이 서려 있는 문화사적 건축물이라는 점, 소프트와 하드의 멋진 결합물이라는 사실이 각종 영화와 대중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시애틀…' 외에 50년대의 '어페어 투 리멤버'와 그 영화를 다시 만든 '러브 어페어' 등 많은 영화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를 낭만이 서린 장소로 그려냈다.

뉴욕 전체가 아예 영화의 단골 무대다. 유명한 도시여서만이 아니다. 도시를 가꾸는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뉴욕에서는 새로 짓는 건물이 주변과 어울리도록 이런저런 규제를 한다. 도심의 활기를 유지하기 위해 건물 1층은 대중 이용시설로 짓게끔 유인책을 쓴다.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자리에 새로 짓는 그라운드 제로 빌딩은 설계를 국제적으로 공모해 홍보 효과를 한껏 올렸다.

독일은 통일 후 수도를 베를린으로 되돌리면서 각국의 유명 건축가들을 초빙해 건물을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했다. 그 결과 베를린은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물의 전시장이 됐다. 세계 대도시들이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건축과 도시 조경에 기울이는 노력은 각별하다.

한데 우리는 지금도 건물을 짓거나 도로를 만드는 일을 그저 '건설.토목'쯤으로만 여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명 건축가에게 설계를 위촉하는 건 박물관.미술관류와 대기업 본사 건물에나 해당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건물과 거리에 문화와 이야기를 담아야 할 때다. 청계천 복원, 서울시청 앞 광장 조성, 가회동 주변 북촌 살리기, 아름다운 간판 달기 같은 사업이 좋은 사례다.

최근의 한류는 이제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국가 산업 전략과도 맞아떨어진다. 한류에 부가가치를 더해 산업화하려면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해야 한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부드러운 힘이, 그 배경인 도시.건축과 어우러져 하나의 문화경제적 유기체가 될 수 있도록 두 측면을 동시에 업그레이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혜경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