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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뒷감당 만만찮은 무상급식 재고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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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내 경우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50년이 채 되지 않는 세월, 학교 점심 하나만 해도 참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구호물자로 만들어진 옥수수죽·옥수수빵과 탈지분유가 배급되던 교실, 도시락만 쌀 수 있다면 반찬이 김치나 무짠지뿐이냐는 문제가 되지도 않던 시절, ‘꿀보다도 더 맛 좋은 꽁보리밥’이라며 밥에 보리나 밀쌀 등이 섞였는지 검사 받던 일들, 보릿고개를 벗어나며 반찬을 두고 투정이란 걸 할 수 있게 된 1970년대 초…. 형편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지금 중·장년이 된 1차 베이비붐 세대들의 점심시간 풍경은 대체로 이렇지 않았나 싶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80년대 후반부터는 학교급식이 대세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지금도 살고 있는 과천의 경우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89년부터 학교급식이 시작돼 중학교·고등학교로 확대되는 바람에 결국 세 아이 모두 도시락을 싸지 않고 학교를 마쳤다.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늘어나면서 도시락 싸기가 만만찮은 일이 됐다는 점이 급식 전환의 주요한 요인이 됐을 거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제 또래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같은 점심’을 먹는다는 것, 그런 일체감이 앞으로 사회생활에도 소중한 밑거름이 되리란 교육적 효과였다. 급식비를 내기 어려운 학생들에 대한 무료 급식이 이뤄지면서 나는 적어도 학교 점심 문제에서만큼은 우리 사회가 제 자리를 잘 잡았단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생각이 짧았다. 형편이 닿지 않아 돈을 내지 못하는 학생들을 배려해 급식을 아예 무료로 하자는 발상이 나올 줄은 몰랐다.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무상 의무교육엔 무상급식도 포함된다는 논리도. 이제 그런 발상과 논리가 시행을 코앞에 둔 단계까지 온 것이다.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의 복지 지출이 너무 적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2008년 기준 공공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8.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0.6%에 크게 못 미친다. 여기까진 현재 상황이다. 문제는 현재의 지출 항목과 증가율만으로도 복지지출 비중은 크게 늘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향후 연 5%씩 성장하고 복지지출이 10%씩 는다 할 때 약 14년 후면 GDP는 두 배, 복지지출은 네 배로 늘어 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은 두 배로 늘게 된다. 그게 기하급수다. 2004~2008년 성장률이 연평균 5%에 못 미친 반면 사회복지지출 증가율은 연 10% 수준이었다. 가장 큰 요인인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은 이제 초기 단계다. 대북지원이나 초기 통일비용 등을 논외로 쳐도, 새로운 의무지출 항목을 더하기란 결코 쉽잖은 구조다. 그런 터에 학교급식처럼 현재 거부감 없이 자기부담으로 정착된 비용마저 공적 지출로 돌리려 한다는 건 난센스다. 교육만 해도 아직 정부·지자체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예산 확정과 시행까진 다소 시간이 있다. 한번 생기면 없애기는커녕 줄이기도 힘든 게 복지지출이다. 다시 생각해보길 정말 간곡히 부탁한다.

박태욱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