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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교실 안에 화장실, 문 열면 운동장, 조리시설 갖춘 어학실까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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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글=이정봉 기자, 박혜린 대학생 인턴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외부인이 침입할 틈이 없다

전면이 통유리로 돼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행정실.

정문에 들어서자 보안요원이 출입하는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했다. 취재기자인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초등학교동으로 들어서는 현관은 한 군데다.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치는 것은 행정실이다. 행정실의 전면은 통유리로 돼 있어 들어온 이가 한눈에 보인다. 낯선 이로부터 교실의 학생들을 보호할 수 있고, 안내가 필요한 학부모들에게는 도움을 줄 수 있는 디자인이다.

교장실도 마찬가지다. 국내 학교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크기의 교장실은 중·고등학교 등굣길이 훤히 보이도록 벽 2개가 모두 유리로 돼 있다. 김경인 전 ‘행복한 학교 만들기’ 이사장은 “교장실은 권위적 공간이 아니라 학생을 살피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담긴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층마다 CCTV가 설치돼 있었고, 노출콘크리트 구조인데도 모서리는 둥글게 마감돼 있었다. 세부적인 부분까지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다.

옆반·운동장·복도로 통하는 문 3개 ‘열린 교실’

화장실과 사물함이 딸린 초등학교 교실. 사물함 뒤편에는 개수대가 있다.

초등학교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교실 같기도 하고 오피스텔 같기도 했다. 우선 공간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절반은 타일, 절반은 카펫이 깔렸다. 타일이 깔린 곳에서는 미술·과학실험 등이 가능하도록 했다. 개수대가 설치돼 있어 금방 씻고 닦을 수 있도록 했다. 화장실도 딸려 있었다. 카펫이 깔린 곳에서 협업식 수업이 이뤄진다. 교단이 없었고, 교사용 책상은 프로젝터·컴퓨터 등을 다룰 수 있도록 만든 컨트롤 타워였다. 김 전 이사장은 “이런 형태의 교실 구조는 교사가 주도적으로 정보를 주입하는 지도자보다 수업을 돕는 보조자가 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옆반 교실로 드나드는 문도 있다. 필요에 따라 반을 옮겨가며 수업을 받고 또래끼리 어울리기 쉽도록 했다.

대운동장 외에도 초등학교동에는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작은 놀이터 같은 운동장이 4개 있다. 지상에서 움푹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중·고등학교생의 간섭 없이 또래끼리 놀도록 설계했다. 또 이 운동장은 현관을 통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 교실과 바로 접해 있어 문만 열면 나가 놀 수 있다. 복도쪽, 창쪽, 벽쪽 등 3곳에 문이 나 있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교실 사이에 있는 프로젝트룸에서 들여다본 한쪽 교실. 프로젝트룸에서는 두 교실의 학생들이 모여 토론·협동 수업을 한다.

중·고등학교의 경우 교실 사이에 10평 남짓의 ‘프로젝트 룸’이 따로 있다. 각각 다른 수업을 듣다가 협업이 필요한 경우 모여서 토론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다. 교실 밖을 나가도 앉아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탁자와 의자가 여기저기 있다. 과학실도 교실 수의 3분의 1에 가까운 13개가 설치돼 있다.

화상 수업·토론 가능한 장비 갖춰

교실마다 스마트보드 기술이 적용된 프로젝터가 설치돼 있었다. 보통 프로젝터처럼 빔을 쏘아 화면에 비치게 하지만 거기에 글씨를 쓸 수도 있고, 이를 학생들의 컴퓨터로 전송할 수 있는 첨단 장비다.

텔레프레젠스 시설을 이용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학생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텔레프레젠스(telepresence) 시설도 국제학교로는 최초로 갖추고 있다. 이는 TV에 카메라를 달아 화상 수업·토론이 실시간으로 가능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채드윅 인터내셔널은 현재 LA 본교와의 협업 수업을 시작으로 세계 85개 학교의 네트워크인 라운드 스퀘어 스쿨과의 교류를 확장할 계획이다. 이혜영 홍보이사는 “시차를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겠지만 교환학생 제도보다 나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놀고 쉬고 떠드는 도서관 … 누워서 책 볼 수도

알록달록한 색깔과 구불구불한 서재로 꾸며진 초등학교 도서관. 아이들이 편한 자세로 책을 볼 수 있도록 자유로운 형태로 꾸며졌다.

도서관은 모든 교실로부터 가기 편하도록 학교의 정가운데 위치했다. 초등학교 도서관은 각양각색의 탁자와 의자가 설치됐다. 공간 자체도 알록달록하게 꾸며져 있다. 책 읽으러 가는 곳이라기보다 놀이공간처럼 보였다. 서재도 낮고 윗부분을 구불구불하게 처리해 그 위에 눕거나 기대 책을 볼 수 있게 했다. 쿠션도 준비돼 있었고 쏙 들어가 혼자 책을 볼 수 있는 작은 다락방 같은 곳도 있다. 김 전 이사장은 “초등학교의 도서관은 대학 도서관처럼 정자세로 앉아 책만 들여다보는 공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쉬다가 책을 볼 수도 있고, 엎드려 볼 수도 있게 디자인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천장이 배 아랫부분 모양으로 만들어진 중·고등학교 도서관. 모빌이 매달려 화사한 분위기를 낸다.

중·고등학교 도서관은 카페와 같은 느낌이다. 천장에 배 모양의 구조물이 붙어 있었다. 지식의 바다를 항해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도서관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책을 빌리고 읽을 수 있는 열람 공간, 노트북을 들고 와 쓸 수 있는 개인 공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토론할 수 있는 부스. 열람 공간에서는 책을 올려놓으면 대출이 저절로 되는 전자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모여 토론·발표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블랙박스 시어터’. 조명·음향 시설을 통해 발표자에 대한 객석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다.

중·고등학교동에는 ‘블랙박스 시어터’라고 불리는 표현 공간이 있다. 소규모 강당으로 네 벽에 좌석이 설치돼 있고 중앙에서 발표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토론과 발표 공간으로 이용된다. 마이크 없이도 목소리가 멀리까지 잘 퍼질 수 있도록 벽에 패널 조각을 달아 각도를 조정할 수 있게 했다. 류호섭 동의대 건축학과 교수는 “토론과 발표 능력이 중요해지면서 이런 형태의 표현 공간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어학실도 특이하다. 보통 칸막이와 헤드폰·카세트 레코더 등이 설치돼 있지만, 이곳은 불판과 개수대가 설치돼 있다. 함께 요리를 하면서 언어를 배우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돼서다. 이 홍보이사는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를 따라하면서 언어를 익히는 것보다 실생활에서 익히는 것이 습득이 빠르고 유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독특한 디자인 책상·소파, 다 이유 있었네

학생의 생활을 배려하는 디자인은 가구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초등학교에서 쓰는 책상은 앞부분이 좁은 사다리꼴이다. 또 바퀴가 달렸다. 필요에 따라 협동수업이 필요하면 책상 앞부분을 다닥다닥 붙여 육각형으로 만들 수 있다. 의자도 바퀴는 없지만 가볍고 이동하기 쉬운 형태다.

초등학교 도서관에 놓인 소파. 앉거나 엎드려 책을 볼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초등학교 도서관의 소파는 꽃잎 모양이다. 꽃의 가운데 부분에는 물건을 얹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어린 학생들은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자세를 바꿔가며 책을 본다는 점을 고려한 디자인이다.

도서관 열람용 책상은 일자로 놓여 마주보고 앉는 식이 아니라 반원형으로 벽을 보고 앉을 수 있는 구조였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 사춘기들을 배려한 디자인이라는 설명이다.



토론 공간, 자유로운 도서관
일반 학교서도 배울 만하네요

모든 학교들이 채드윅 인터내셔널처럼 수영장ㆍ실내체육관ㆍ대강당을 갖출 수는 없다. 하지만 몇몇 아이디어는 크지 않은 비용으로도 일반 학교에 적용이 가능하다. 함께 이곳을 둘러본 두 전문가가 현재 국내 학교에 어렵지 않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

●중·고등학교에 토론ㆍ발표를 위한 공간을 설치하자.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학교에 들어가서야 토론ㆍ발표 수업을 한다. 훈련을 받은 적이 없으니 잘 될 리 없다. 우리나라는 교장실 면적이 넓은 편이다. 학교에 공간이 없다면 교장실을 지금은 절반 이하 크기로 줄이고 소규모 토론 공간을 만들어도 될 것이다.

●초등학교 도서관은 책만 읽는 곳이 아니라 쉬고 놀 수 있는 장소로 디자인하자. 눕거나 엎드려서 혹은 함께 모여서 키득대며 책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책이 엄숙하고 힘든 것이 아니라 편하고 친구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흥미를 느낀다.

●복도 자투리 공간에 탁자를 놓자. 아이들이 교실 밖만 나오면 앉을 곳이 없다. 운동장 주위에 있는 설치된 벤치가 전부다. 방에 의자가 있고, 거실에도 소파가 있는 것처럼 교실뿐만 아니라 그밖의 공간에서 쉬고 떠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학부모가 학교를 찾아도 앉아서 기다릴 곳도 없고, 선생님과 마음 놓고 이야기나눌 곳이 없다. 학교를 보면 계단 주위에 탁자와 의자를 놓을 수 있는, 의외로 남는 공간이 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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