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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전쟁 포르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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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포르노가 뭐라고 정의를 내리진 못하겠다. 하지만 보면 알 수 있다.” 1964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나온 유명한 판결의 일부다. 프랑스 영화 ‘연인들(Les Amants)’의 음란성 여부를 따지는 재판에서였다. 전설적 여배우 잔 모로가 낯선 청년과 사랑의 도피를 떠나는 유부녀로 분했었다. 절대 이 영화는 포르노가 아니라면서 당시 판사가 근거로 댄 게 바로 위 문구였다.

사실 ‘성적 자극을 목적으로 인간의 신체나 행동을 묘사한 것’이란 사전적 의미만으론 분간이 쉽지 않다. 그보단 포르노 공통의 특성이 있는지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될 게다. 등장 인물의 도구화와 폭력성, 그리고 그걸 훔쳐보며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장기화하며 쏟아져 나온 자극적 사진과 동영상들을 ‘전쟁 포르노(war porn)’라 명명한 건 그럴싸해 보인다. 유튜브·마이스페이스 등 인터넷 사이트마다 처참한 시체와 총격 장면들을 좇는 클릭이 셀 수 없이 이뤄지고 있다.

2004년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발(發) 사진들이 시발점이었다. 나체 상태인 이라크인 수감자의 목에 개처럼 줄을 묶은 뒤 의기양양하게 포즈를 취한 앳된 미국 여군(女軍)의 모습이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벌거벗은 수감자들로 층층이 피라미드를 쌓은 사진도 있었다. 이를 두고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희생자들의 자세에서 전문적 포르노를 흉내 낸 기미가 느껴진다”며 “(사진을 찍은 군인들이) 아마추어 작가의 타락과 잔학성, 진부함을 드러낸다”고 꼬집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옛날 군인들이 전리품을 챙기듯 요즘 군인들은 카메라로 참전의 기록을 남기려 한다”는 게 데이비드 슈미트 미 버펄로대 교수의 진단이다. 군인들이나 그들이 기록한 이미지를 소비하는 이들이나 모두 적(敵)이 처한 비인간적 상황에서 기이한 즐거움을 찾고 있다는 거다.

최근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탈레반 전사인 남편에 의해 코가 잘린 아프간 여성 사진을 실은 데 대해서도 일각에선 “전쟁 포르노”란 비난이 일고 있단다. 타임 측은 “아프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일 뿐”이라며 반박에 나섰다. 하지만 타임의 의도가 어떠했든 그런 비난에서 완전히 자유롭긴 힘들 듯하다. 전쟁의 참상조차 오락거리로 삼는 기막힌 세태가 엄연히 존재하니 말이다.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