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중앙일보 서울국제마라톤>"5년 묵은 여자기록 중앙마라톤서 깨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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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강원도 춘천 종합운동장. 잔뜩 찌푸린 날씨에 인근 공지천(孔之川)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매서웠다. 두껍게 옷깃을 여미어도 냉기가 옷 속으로 파고들건만 그녀는 반팔 차림으로 운동장을 거침없이 돌았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듯한데도 한치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정갈히 뛰게 만드는 것일까.

마라토너 배해진(23·도시개발공사). 그녀는 지금 야무진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고 있다. 1997년 권은주가 세웠던 한국최고기록(2시간26분12초)을 11월 3일 중앙일보 서울국제마라톤에서 돌파하겠다며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도시개발공사 최선근(51)감독은 "요즘 연습기록 같으면 2시간27∼28분대는 무난히 뛸 것 같다. 당일 컨디션만 좋으면 최고기록 작성도 가능하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최근 한국 여자마라톤은 하향곡선이다. 97년 이후 2시간30분 이내를 달린 선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배해진의 등장은 여자마라톤의 낭보다. 고교 때까지 장거리 선수였던 배해진은 4년 전 도시개발공사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으로 마라톤을 시작한 풋내기 마라토너다. 공식 대회에서 42.195㎞의 풀코스를 뛰어본 것은 단 한번에 불과하다. 그것도 몸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연습삼아 뛰어본 것이라 이번 중앙마라톤이 그녀로선 사실상 데뷔 무대인 셈이다.

어떻게 이만큼 성장한 것일까. 그 뒤엔 최선근 감독이 있다. 최감독은 배해진이란 신인을 탄탄히 조련시켜 이번 중앙마라톤에서 한국기록을 넘볼 수준으로 키워냈다.

그러면서도 최감독은 배해진에 대한 칭찬은 자제한다. 키(1m65㎝)에 비해 상대적으로 하체가 긴 것과, 장시간 일정한 보폭과 팔 동작을 유지하는 밸런스 유지능력은 마라토너로서 천부적 조건이라고 치켜세운다. 그러나 이는 신체조건이 그렇다는 것일 뿐 근성과 경험이 부족해 극한 상황을 넘는 힘에선 미흡하다고 한 자락을 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겨울부터 제주도와 강원도 산골을 오가며 '지옥 훈련'을 시켰다. 마라톤 풀코스에 해당하는 40㎞를 뛴 뒤에 쉬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또 20㎞ 이상씩을 달렸다.

근육이 가장 피로한 순간, 이를 이겨낼 정신력과 지구력을 깊이 새기기 위해서였다.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란 마라톤. 최감독과 배해진은 중앙마라톤에서 어떤 전략으로 한국기록을 다시 쓸지 오늘도 머리를 맞대고 있다.

춘천=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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