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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2400m 공중 도시엔 아직도 풀지 못한 의문 가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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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호 09면

1 신이 만든 웅장한 자연 위에 잉카인의 위대한 건축술이 접목된 아메리카 최대의 복합유산지역 마추픽추 전경. 1988년 여름에 발생한 화재로 많은 희귀 동식물이 사라졌지만 철저한 보호정책으로 안경곰, 안데스 바위새, 안데스 곤돌, 라마가 다시 서식하고 있다.

오직 하늘에만 모습 드러내는 늙은 산봉우리
우루밤바 강물 소리에 달콤한 새벽잠을 빼앗긴 나는 자그마한 정원에 섰다. 마추픽추를 찾을 때면 늘 머무는, 늙은 산봉우리가 보이는 숙소다. 초승 달빛에 모습을 드러낸 유적지는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봉우리뿐. 잉카사람들의 애환과 혼이 담긴 유적지는 거대한 봉우리를 방패 삼아 몸을 숨기고 있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안경 너머로 또렷하게 형태를 드러낼 무렵 안나가 나타났다. 마추픽추를 찾을 때면 그녀는 늘 나의 입과 귀가 되어준다. 우리는 편리한 교통편 대신 먼지가 날리는 신작로와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선택해 유적지로 향한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변화무쌍한 풍경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왔다 사라진다. 두 시간 남짓 멋진 풍광을 배경 삼아 걷다 보면 어느새 유적지에 이른다.

사진작가 이형준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 복합유산을 찾아서 <3>페루-마추픽추

2 전통 복장을 한 소년. 3 잉카인 가정집에 모셔진 선조의 유골. 많은 가정에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

유적지 입구에 서면 묘한 기대와 긴장이 몰려온다. 비 오듯 흐르는 땀에도 우리는 곧장 오두막 전망대로 향했다. 유적지와 주변 풍광을 감상하기에 최적인 곳이다. 이전 두 차례 올라 감상했던 풍광과 별반 다르지 않다. U자형 계곡 사이에 조성된 유적지와 녹음 짙은 안데스 봉우리까지. 시간을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는 여전히 일부만 드러내고 있다. 잉카인이 숭배했던 태양이 떠 있는 하늘에만 완벽한 모습을 허용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밝혀진 건 잉카의 유적지라는 사실뿐
오두막 전망대에 서면 마추픽추 유적지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정글이 연상되는 울창한 숲, 거대한 봉우리 아래에 조성해 놓은 크기와 모양이 다른 건축물, 계곡 사이로 흐르는 우루밤바 강은 신비롭고 영롱함보다 긴장과 두려움으로 다가온다.풀지 못한 의문으로 가득한 유적지 마추픽추. 밝혀진 것은 잉카인에 의해 건설된 유적지라는 것뿐 수많은 이야기는 아직까지 의문으로 남아 있다. 학자들이 밝혀낸 것은 고작 조성된 시기와 규모 정도가 전부다. 마추픽추는 15세기 중반 완성된 유적지다. 학자들은 정교한 석조 건축물과 사다리꼴의 출입문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파차쿠티 잉카 유판키 왕이 다스리던 당시 제국의 중심 쿠스코에 건설한 석조 건축물과 사다리꼴 출입문이 꼭 닮았다.

4 건국신화의 무대이자 왕가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3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 여러 개의 창문과 정교한 건축술은 쿠스코 유적지에 세워진 건축물과 흡사하다. 5 마추픽추 유적지를 상징하는 태양의 신전. 200여 인공구조물 중 가장 웅장하고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한다.

마추픽추는 쿠스코와 다르게 도시 기능보다 제례 의식을 올리는 신성한 장소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러 증거 가운데 하나가 유적지에서 발굴된 175구의 미라다. 발굴된 시신 중 150구가 여자이고 나머지가 사제와 어린 사내로 추정되는 남자였다. 태양의 신에게 바쳐진 제물이 여성임을 말해준다.

6 마추픽추를 응시하고 있는 라마. 안데스 산맥에 서식한다. 잉카인들은 라마를 매우 중시하여 계절마다 라마의 번식을 기원하는 행사를 가졌다.

태양의 신전, 부드러운 곡선 인상적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화가의 화폭도 유적지의 신비롭고 웅장함을 담아낼 수 없을 것이다. 크기와 모양이 다른 200여 채의 인공구조물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모든 구조물이 화강암인 까닭은 화강암 산지가 지천에 흩어져 있기에 가능했다. 저마다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던 건축물 가운데 핵심은 말굽 모양인 ‘토레옹(큰탑)’으로 불리는 ‘태양의 신전’이다. 처음 마추픽추를 찾았던 15년 전 안내를 담당했던 안내자와 지난번에 이어 이번 방문에도 도움을 주었던 안나도 두 곳의 중요한 장소 중 한곳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인공구조물 가운데 최대 규모인 태양의 신전은 커다란 바위 위에서 유적지와 우루밤바 강을 응시하고 있다. 부드러운 곡선이 인상적인 태양의 신전에는 창문이 두 개 있다. 그중 동남쪽 창문은 동짓날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창문을 통과하도록 건설해 놓았다.

태양의 신전 주변에는 주요 건축물이 모여 있다. 잉카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장소이자 나무로 만든 건물 기둥이 발견된 왕녀의 궁전, 다양한 의식을 거행했던 3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 감옥으로 추정되는 자연동굴이 위치한 곤돌 신전, 그리고 마추픽추에 거주했던 주민들의 터전인 주택과 옥수수와 감자를 보관했던 창고다.

태양이 머물렀던 신성한 장소 인티우아타나
서쪽 언덕에는 태양의 후손들이 신성시했던 구조물이 세워져 있다. 넓은 바위를 기둥 모양으로 깎아 놓은 인티우아타나. 케추아 언어로 인티는 태양을, 우아타나는 연결이란 뜻이다. 보는 순간 태양과 연관된 것임을 알 수 있는 ‘인티우아타나’는 단순한 해시계가 아니다. 태양의 아들임을 자임했던 잉카인에겐 어떤 곳보다 성스러운 장소였다. 문자가 없던 잉카인들은 ‘키푸’라고 불리는 매듭을 이용해 단위를 환산하고 주요 사건을 기록으로 남겼다. 현재 일부만 해독된 키푸에 의하면 제사장인 신관은 동짓날이면 인티우아타나에서 태양을 묶는 의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높이 1.8m에 달하는 인티우아타나에서 거행되었던 의식은 농업을 중시했던 잉카인들에게 곧 풍요를 가늠하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잉카인이 건설한 도시에는 빠짐없이 중심부에 인티우아타나가 세워져 있다.

한편 오두막 전망대에서 남쪽 산을 향해 오르다 보면 인티우아타나와 비슷한 구조물이 있다. ‘장의석’이라고 불리는 커다란 돌은 특별한 장식이나 문양도 없다. 평범해 보이는 장의식에 관한 용도는 밝혀진 것이 없다. 다만 그 모양과 위치로 보아 의식이나 행사 때 사용한 제단으로 추정하고 있다.

잉카인의 지혜를 유감 없이 드러낸 공간 활용
영어 교사이자 전문안내원인 안나는 잉카인의 지혜와 능력을 보여주는 유적지로 세 곳을 꼽았다. 화강암 건축물과 경작지, 그리고 관개수로다. 풍부한 화강암을 이용한 축대 축성과 지형을 활용한 건축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정사각형 광장을 중심으로 건물·도로·계단이 조성된 유적지는 한눈에도 계획도시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자연지형을 활용한 용도가 다른 건축물과 안정감이 느껴지는 사다리꼴 문, 볏짚으로 만든 지붕이 날아가는 것을 방지하지 위해 설치한 구조물 등도 눈길을 붙든다.

계단식 경작지는 놀라움 그 자체다. 가파른 경사면을 활용한 잉카인의 뛰어난 지혜와 건축술은 경작면적을 세 배나 확보할 수 있었다. 그들은 계단식 경작지에 우루밤바 강에서 옮겨온 흙을 이용해 옥수수와 감자·코카나무 등을 재배했다. 해발 2400m에 건설해 놓은 관개시설도 빼놓을 수 없다. 학자 중에는 마추픽추 유적지가 사라지게 된 이유를 물 부족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 시각에도 끊임없이 물이 흐른다. 그것도 산에서 솟은 샘을 지하 수로를 이용해 16곳에 달하는 수원지로 이동시킨 후 주요 장소로 공급했다. 마추픽추 복합유산지역은 이전까지 아메리카 대륙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공간개념을 보여주고 있다.

* 다음 호는 스페인과 프랑스에 걸쳐 있는 ‘피레네-몽 페르 뒤’를 찾아갑니다.

여행 메모

<가는 길>마추픽추로 가려면 LA, 리마를 경유해 쿠스코행 비행기에 올라야 한다. 쿠스코에서 마추픽추까지는 기차와 헬리콥터를 이용해 갈 수 있다.드라마틱한 풍광을 감상하려면 기차가 제격이다. 페루는 비자 없이 3개월 동안 여행할 수 있다.
마추픽추 지역에는 숙소와 레스토랑을 비롯해 잉카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는 2~7일짜리 트레킹 상품이 있다.


사진작가이자 여행작가.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뒤 20여 년 동안 130여 개 나라, 1500여 곳의 도시와 유적지를 다니며 문화와 자연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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