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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 합성 시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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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호 31면

자동차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선 평균 1만4000여 개의 부품이 필요하고, 맥도넬 더글러스(MD)의 F-15E 전투기 한 대를 만들기 위해선 24만 개의 부품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 생명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몇 개의 `부품`이 필요할까? 불행하게도 우리는 아직 하나의 생명체가 형성되고 유지하는 데 얼마나 많은 ‘부품’이 필요한지 전혀 알지 못한다. 입자물리학자이고 노벨상 수상자이면서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했던 리처드 페인먼 박사는 우리가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이해한다고 할 수 없다라고 단언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인류는 생명체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생명체는 보통 두 가지의 큰 특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첫째, 자기 스스로 대사 과정을 통해 주위 환경과 구분되는 항상성(恒常性)을 유지해야 한다. 둘째, 자신과 같은 개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복제 기능이 있어야 한다. 지난달, 생명을 이해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던 과학계에 큰 획을 긋는 연구 결과가 미국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인간의 염색체 염기 서열을 해독하는 데 성공했던 크레이그 벤터 박사가 DNA를 합성해 간단한 박테리아 생명체를 탄생시킨 것이다. ‘미코플라스마 미코이즈 JCVI-syn1’이라는 복잡한 이름이 붙여진 이 박테리아는 인간이 스스로 합성해 만들어 낸 최초의 생명체로 인정받았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미코플라스마 미코이즈 박테리아의 유전자 가운데 꼭 필요한 부분만을 기계로 합성해 유전자를 없앤 다른 박테리아에 삽입함으로써 자신과 같은 개체를 지속적으로 복제하게 만든 것이다.

간단해 보이는 이 작업에는 그러나 꼬박 15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됐다. 극도로 꼼꼼한 작업을 통해 100만 개가 넘는 염기서열을 하나하나 꿰어 맞추며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를 합성해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투자된 돈도 4000만 달러(약 470억원)에 이른다.

벤터 박사는 이 생명체를 만든 뒤 인위적으로 만든 생명체임을 알리는 기록도 남겨 두었다. 유전자 염기 배열에 암호를 집어넣은 것이다. 평소 페인먼 박사가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즐겨 말하던 우리가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이해한다고 할 수 없다는 말도 그 암호들 속에 포함시켰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페인먼 박사의 말대로 생명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생명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답은 단호한 아니요다. 먼저, 이 박테리아를 만들어 낸 벤터 박사도 자신이 합성한 유전자들이 정확히 무슨 기능을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하다는 정보 하나만으로 퍼즐을 맞추듯 합성해 나간 것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합성 박테리아는 앞으로 인류가 생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임에 틀림없다. 또 하나, 벤터 박사는 새로운 박테리아를 합성한 방식으로 기존 박테리아들의 DNA를 개조함으로써 친환경 바이오 연료를 양산하거나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등 인류의 당면 과제들을 풀어 나가는 도구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가 벤터 박사에게 지원한 연구비가 헛되이 쓰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생명의 신비에 관한 연구는 그것 자체로 인간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 준다.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인류가 부닥친 난제들을 해결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기초과학 투자가 당장 피부에 와 닿는 성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코 지원에 인색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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