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핵파문]제네바합의 무효화 주장하던 北韓 "합의 준수"로 태도 돌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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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은 지난 7일 외무성 대변인 회견에 이어 21일 평양방송을 통해서도 미국의 제네바 기본합의 불이행을 재차 강조하면서 이를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북한은 특히 제네바 합의가 채택된 지 8년이 지났는 데도 아직 출발선에서 맴돌고 있으며 핵심사항인 2003년 경수로 완공이 계속 지연돼 결국 파기 위기에 봉착했다고 꼬집었다.

이달 초 제임스 켈리 미 특사에게 제네바 합의가 무효화됐다고 언급한 것을 감안할 때 얼핏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은 제네바 합의를 깬 것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임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켈리 특사 방북 이전에도 여러 차례 제네바 합의에 2003년까지로 돼 있는 경수로 완공이 5년 가량 지연됨에 따라 미국이 추가 전력을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보상이 안 이뤄지면 '해당 조치'를 취하겠다는 위협도 덧붙였다. 북한은 또 ▶합의문 체결 3개월 내 통신 및 금융결제 제한 해제▶핵무기 위협 금지 등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실제로 강석주 북한 외교부 제1부상은 켈리 특사에게 미국이 제네바 합의를 지키지 않아 새로운 핵개발을 추진해왔다며 제네바 합의 파기의 책임을 떠넘긴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은 지난 7월에 취한 경제관리 개선조치와 9월의 북·일 정상회담, 신의주 특구 발표 등 파격적인 개혁 행보를 보여왔다. 이들 조치가 성공하려면 북·미관계를 어떻게든지 개선해야 할 입장이었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이에 따라 북한이 켈리 특사에게 우라늄 농축 실험을 통한 핵무기 개발사실을 시인한 의도는 북한과의 관계개선 의사를 보이지 않는 부시 행정부를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충격요법'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런 의도와 달리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위반했다고 미국이 공세를 늦추지 않자 북한도 '미국 책임론'을 거론하며 맞서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이 ▶과거 핵 의혹 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에 협조하지 않고▶핵개발 프로그램이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문 체결 이후에 발생한 것으로서 이는 합의문을 위반한 것이라는 일관된 주장을 견지하고 있다.

고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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