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미국은 한·미 FTA를 선거 제물로 삼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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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기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그냥 통과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산별노조총연맹(AFL-CIO) 지도자들과 만나 “교역이 모든 미국인에게 도움이 돼야 하며, 올가을 한국을 방문하기 전에 자동차·쇠고기 업계를 이해시킬 협정을 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앞서 미 상원 재무위원회의 맥스 보커스 위원장은 “한국은 월령(月齡) 및 부위와 상관없이 쇠고기 시장을 전면 개방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지난 6월 양국 정상은 올가을까지 한·미 FTA의 쟁점을 타결 짓기로 합의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새로운 논의가 “재협상(renegotiation)이 아니라 조정(adjustment)”이라고 표현해 기대감을 높인 바 있다. 그러나 어제부터 미국은 여름철 총공세를 연상시킬 만큼 발언 수위가 높아졌다. 9월에 시작될 실무협상을 앞두고 한국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미국은 실무협상에서 수입 쇠고기 월령 철폐와 자동차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쇠고기는 촛불 사태의 홍역을 앓은 만큼 예민한 사안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한·미 FTA 대상도 아니다. 양국이 합의한 대로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되는 시점’까지 쇠고기 월령 철폐는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 또한 미국의 경쟁력이 문제다. 아무리 수입을 늘리고 싶어도 품질과 마케팅에서 유럽·일본 차에 뒤지면 소용없는 게 현실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주요 지지 기반인 노조와 농민의 입장을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미 행정부에 절실한 것은 내부 설득이다. 한국을 압박하기보다 자국의 축산농민과 자동차노조에 현실을 이해시키는 게 우선이다. 한·미 FTA를 중간선거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유혹부터 뿌리쳐야 한다. 이미 한·미 FTA는 협상을 타결하고도 3년의 시간을 허송했다. 한·유럽연합(EU) FTA 타결에서 보듯 시간을 늦출수록 미국의 선점 효과는 줄어든다. 미국은 자유·호혜라는 FTA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한다.